헬싱키에서 북서쪽으로 차로 30분가량을 이동하니 북적이는 도심과 달리 아기자기한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에스포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에스포는 헬싱키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장인들의 대표 거주지역 중 하나다. 평일 오후4시였지만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는 아빠나 엄마들을 마을 거리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집 앞 마당에서는 아빠·엄마와 놀고 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이곳에서 일곱 살 도미오와 네 살 미로의 아빠·엄마인 리쿠 우오틸라, 로라 빈하 부부를 만났다.
오후3시께 빈하씨가 퇴근길에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저녁 식사 전까지 조금이라도 함께 노는 시간을 갖는다. 우오틸라씨는 오후5~6시 사이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우오틸라씨는 “회사 업무가 남았을 때는 아이들을 재운 후 집에서 마무리를 해놓으면 되기 때문에 유연근무제로 늦게 출근하더라도 일찍 퇴근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핀란드의 많은 가정이 이런 업무 환경과 시스템을 통해 일을 하면서 아이를 돌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우오틸라·빈하 부부는 유연근무제를 통해 주 4일만 근무하고 있다. 핀란드 정부에서 아이가 만 8세인 초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주 4일 근무 등 부모의 유연근무제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주 5일과 주 4일 근무의 급여 차이가 발생하는 부분은 핀란드 사회보장국인 KELA에서 해당 기간 이에 상응하는 정부보조금을 통해 지원한다. 월요일에 쉬는 빈하씨와 금요일에 쉬는 우오틸라씨는 각각 평일 휴일에 아이들을 돌보고 주말에는 미처 처리하지 못한 집안 잔무를 마무리한다. 빈하씨는 “둘째 미로를 출산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의 주4일근무제 중 평일 휴일을 이용해) 아이가 3세가 될 때까지 일주일에 하루씩 직장에 나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며 “동네 이웃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출산 직후 금전적인 면을 떠나 커리어 유지 차원에서 주 1일이나 2일 출근하는 워킹맘도 있어 이 같은 근무 형태가 낯선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부부는 아빠와 엄마들이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조건으로 공공 어린이집 시설인 데이케어 시스템을 꼽는다. 빈하씨는 “아내가 의사이고 남편이 간호사인 이웃 부부는 3교대·야간 근무가 잦은 응급실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심야에도 운영하는 특별 공립 어린이집에 보낸다”며 “24시간 운영, 1박 가능 어린이집 등 다양한 데이케어 시스템이 있는데 이런 특별한 어린이집은 부모들이 아이를 맘 놓고 키울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우오틸라씨는 또 “정부가 실제 데이케어 시스템 이용비용의 75%가량을 보조해줘 부모의 부담도 덜어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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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하씨는 육아휴직을 마치고 3년 만에 주4일제로 완전히 복직할 때도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계속 일한 사람과 휴직한 사람에 대해 승진과 같은 회사의 대우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직원에게 최소한 육아휴직 전과 같은 위치의 자리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법으로 제정돼 있어 기본적으로 직위가 보장된다”며 “3년이 지났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업무 환경이 그대로인지 놀랄 정도로 복직 후 회사 생활은 무척 쉬웠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 부부는 육아휴직과 유연근무제는 남녀 근로자 모두에게 필요한 제도라고 입을 모았다. 빈하씨는 “직장 상사는 남녀 모두가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어 일자리가 순환되는 효과가 있다고 얘기하기도 했다”며 “아빠들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이들과 집에 있는 것이 휴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우오틸라씨 역시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더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집안일을 하나하나 알아가게 된다”며 “이렇게 육아휴직 기간을 보내고 나면 남성 동료들끼리 쉬려고 회사로 복귀한다는 농담을 하곤 한다”고 웃었다. /에스포=이지윤기자 lu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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