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을 비판해온 사우디 언론인 실종사건의 파장이 국제사회로 확대되고 있다. 사우디 왕실이 자국 언론인의 암살을 지시했다는 터키 정부의 주장을 사우디 정부가 강력히 부인하면서 양국관계가 얼어붙은 것은 물론 영국과 유엔 등에 이어 친사우디 동맹국인 미국도 진상파악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사우디를 겨냥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고조되고 있다.
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익명을 요구한 터키 보안당국 관리의 말을 인용해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쇼기가 사우디 왕실 최고위층의 지시로 암살된 것으로 터키 정부가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앞서 카쇼기는 지난 2일 혼인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받기 위해 사우디 총영사관에 간 뒤 행방불명됐다. 이 관리는 “그가 총영사관에 들어간 지 2시간도 안 돼 사우디에서 온 요원들에게 살해됐고 시신도 그들이 분리했다”면서 “이러한 성격의 ‘작전’에 대한 명령은 오로지 사우디 최고위급 지도자들만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의혹이 꼬리를 물고 확산되자 사우디 정부는 사건 수사를 위해 터키 정부가 이스탄불 주재 자국 총영사관을 수색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당국의 암살 연루 의혹은 전면 부인하고 있다. 칼리드 빈 살만 주미 사우디대사는 이날 개인 성명을 통해 “카쇼기가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 또는 사우디 당국에 감금됐다거나 살해됐다는 보도는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며 “다른 방문객과 대사관 직원이 많은 근무시간에 총영사관 안에서 살해됐다는 주장이 가당한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논란이 커지면서 사건의 파문은 국제사회로 확산되고 있다. 제러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은 사우디 아델 알주바이르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 “우호관계는 공유하는 가치에 달려 있다”고 경고했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영국 외무부 대변인은 만약 이 사건을 둘러싼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영국은 ‘매우 심각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유엔 인권담당 실무자도 기자들과 만나 “카쇼기가 무력에 의해 실종된 것은 매우 우려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사우디 동맹국인 미국의 압박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 사건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언급한 데 이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철저한 조사와 함께 투명한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랜드 폴 상원의원은 출신지 켄터키주 지역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번주 상원에서 사우디에 미국 무기를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표결을 제안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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