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투자펀드(PEF)가 기업을 사서 가치를 높이는 게 사실 스튜어드십 코드인데 원래 하고 있고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도장을 받으라니 이게 뭔가 싶습니다.”
국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을 이끌고 있는 1세대 PEF 운용역 A씨. 그는 기업을 사들여 가치를 높인 뒤 되팔기까지의 과정을 수차례 반복해왔다. 이 과정에서 회사가 아닌 자신을 위한 투자를 하겠다는 대주주를 막아선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그가 오너 리스크로 저평가돼 있는 한국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스튜어드십 코드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유는 뭘까.
PEF 업계에서 A씨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B씨는 한발 더 나아갔다. 더 큰 문제인 사외이사 제도를 우리가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외이사는 대주주와 관련이 없는 외부 전문가를 이사회 구성원으로 선임하도록 하는 제도다. 자산이 2조원을 넘는 상장법인은 이사회 멤버의 절반을, 그 외 상장법인은 4분의1 이상을 사외이사로 채워야 한다. 목적은 스튜어드십 코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소수지분을 가진 대주주의 경영을 견제해 절대다수인 소액주주의 재산권을 지키는 것. 다른 게 있다면 스튜어드십 코드는 주총을, 사외이사 제도는 이사회를 활용한다는 점뿐이다.
실제로 지난해 떠들썩한 논쟁을 겪고 올해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됐지만 정작 재벌 견제의 다른 축인 사외이사 제도를 고치겠다고 나선 이는 아무도 없었다. 국제통화기금(IMF) 환란이라는 뼈아픈 수업료를 내고 도입한 사외이사 제도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재벌의 ‘거수기’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는 실정이다. B씨는 “자본주의 사회라면 대주주 지분율도 존중해줘야 하는데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그런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 노후자금을 통해 주주총회를 흔드는 것보다는 이사회가 잘 굴러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본질적인 해결책”이라며 “그렇게 하면 기업 가치도 자연스럽게 올라간다”고 강조했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긍정적 효과는 분명 있다. 오너 리스크를 견제하면 기업 가치도 올라갈 수 있다. 다만 사외이사 제도를 이대로 놓고 643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만 앞세우면 잡음이 더 커질 수 있다. 이제 막 진용을 갖춘 국민연금도, 우리 사회도 대주주 오너 문제라면 시끄럽게 개혁하고 보자는 여의도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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