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다가 무죄를 받고 강제 추방된 스리랑카인 K씨가 본국에서 또 다시 재판에 넘겨졌다.
16일 법무부는 스리랑카 검찰이 한국 요청에 따라 K씨를 스리랑카 콜롬보 고등법원에 성추행죄로 지난 12일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는 K씨 범행의 공소시효 20년이 만료되기 사흘 전이다.
K씨는 다른 스리랑카인 공범 2명과 함께 1998년 10월 17일 새벽 대구에서 대학 축제를 마치고 귀가하던 대학교 1학년생 정모(당시 18세)씨를 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로 데려가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특수강도강간죄)로 지난 2013년 기소됐다.
정씨는 당시 고속도로에서 25t 덤프트럭에 치여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현장 30여m 떨어진 곳에서 속옷에서 남성 정액 DNA가 발견돼 성폭행이 의심됐지만,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결론 내고 수사를 종결했다.
그런데 2013년 DNA 데이타베이스가 구축된 뒤 K씨의 DNA가 씨의 속옷에서 발견된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K씨는 2011년 미성년자에게 성매매를 권유한 혐의로 입건돼 유전자(DNA) 채취검사를 받았었다.
이에 대구지검은 재수사를 벌여 그를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강간죄 공소시효 5년이 2003년에, 특수강간죄 공소시효 10년이 2008년에 각각 지난 데 따라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강도강간죄를 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1심은 K씨가 정씨 가방 속 현금, 학생증, 책 등을 훔쳤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에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당시 국내에 머물던 스리랑카인을 전수 조사한 끝에 K씨의 공범으로부터 범행을 전해 들었다는 증인을 찾아 항소심 법정에 세웠다.
하지만 2심은 K씨의 성폭행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증언의 신뢰성이 떨어진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2년여의 심리 끝에 지난 18일 2심 결론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K씨는 2013년 다른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와 2008∼2009년 무면허 운전을 한 별도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돼 강제 추방이 결정됐다. 집행유예가 확정된 외국인은 국내에서 강제 추방된다.
법무부는 K씨 추방 이후 스리랑카 법령상으로는 강간죄의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스리랑카 측에 사법 공조를 요청했다. 스리랑카에서는 살인·반역죄 외에는 모든 범죄의 공소시효가 20년이다.
법무부는 대구지검 수사를 이끌었던 김영대 서울북부지검장을 중심으로 전담팀을 꾸려 스리랑카에 2회 방문하고 1,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증거서류 번역본 제출 등을 수행했고, 스리랑카 측도 수사팀을 한국에 파견해 다수의 참고인 조사를 실시했다.
다만 최종 기소 결정단계에서 한국 측은 주범에 대한 강간죄 기소를 요청했으나, 스리랑카 측은 K씨의 DNA가 피해자 속옷에서 발견된 점, 강압적 성행위 인정할 수 있는 추가 증거가 없는 점을 이유로 성추행죄로 기소했다. 스리랑카 형법상 성추행 죄는 법정형 징역 5년 이하로 추행, 성희롱 등에 적용된다.
법무부 관계자는 “스리랑카 사법당국으로서도 2006년 형법 개정 후 최초로 국외 발생 범행을 기소한 사안”이라며 “공판과정에서도 스리랑카 검찰과 긴밀히 협조해 ‘범인 필벌’이라는 사법정의 구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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