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제재 원칙도 흔들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판단이 선다면 제재 완화를 통해 비핵화를 촉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가 전제됐지만 방점은 제재 완화에 찍혔다. “구체적인 비핵화 의지를 보여줄 때까지 유엔 제재는 계속돼야 한다”는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과는 결부터 다르다. 국제사회의 일관된 제재 흐름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
한국 정부의 지나친 저자세는 한미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군이 일본 요코타 기지 방문자에 대한 추가 심사 대상 국적자로 북한·중국 등과 함께 한국인을 포함한 것이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남북 군사합의서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한 것도 예전에는 없었던 사건들이다. 한미관계의 균열이 단순한 우려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북한의 비위를 맞추면 비핵화가 더 빨리 이뤄질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나 이는 큰 착각이다. 오히려 협상의 주도권을 북한에 넘겨줘 협상을 더 어렵게 할 뿐이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선 비핵화 후 제재완화’를 고수하는 것도 북한에 끌려갈 경우 결과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다. 정부가 진정 한반도에서 핵을 완전히 없애고 영구평화 체제를 구축하길 원한다면 북측에 허리를 굽힐 게 아니라 “핵 포기 없는 제재 완화는 없다”고 당당히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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