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뒤 발발한 제4차 중동전쟁은 달랐다. 아랍이 선제공격으로 기선을 제압한 것이나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 양상을 띤 것도 차이다. 미국과 소련이 국제유가 불안과 양국 충돌 가능성을 우려해 중재에 나서면서 개전 20일 만에 포성은 멈췄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전쟁이 시작된다. 이번에는 사우디가 나섰다. 사우디는 과거와 달리 석유무기화 정책을 주도했다. 석유전쟁에는 치밀한 전략가 야마니가 있었다. 서른두 살이던 1962년 사우디 석유장관에 기용된 그는 사반세기 동안 장수하며 국제유가를 쥐락펴락한 인물이다.
야마니는 전면금수를 주장한 강경파를 설득해 월 5%씩 감산을 이끌어냈다. 그 정도만 줄여도 이스라엘을 감싸는 서방 진영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는 그의 예상대로 세계 경제는 1차 오일쇼크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겪는다. 국제유가는 금수조치 한 달 만에 4배 급등했다. 미국은 성장이 멈췄고 일본은 전후 첫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했다. 한국이 1973년 말 굴욕적인 ‘친아랍 지지’ 성명을 낸 데서는 오일쇼크의 충격파를 가늠하고도 남는다. 정부는 외교부 성명에서 “이스라엘은 67년 전쟁에서 점령한 영토로부터 철수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아랍 편을 들었다.
사우디 출신 언론인 암살사건의 파장이 심상찮다. 미국 영주권자이기도 한 언론인 암살의 배후에 사우디 왕실이 있다는 정황이 드러나자 미국마저 등을 돌릴 태세다. 급기야 사우디는 외교부 성명을 내 석유무기화 카드를 뽑아들 수 있음을 시사했다. 위협이 먹혀든 것일까. 의혹이 사실이면 “응징하겠다”던 백악관이 하루 만에 입장을 바꿨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급파하는 등 확전 자제 모드가 역력하다. 언론인의 죽음과 갈팡질팡하는 미국의 태도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우디발 석유전쟁은 아무런 명분이 없다는 점이다. 천하의 ‘석유제왕’ 야마니가 되살아나도 마찬가지다.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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