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여야 의원들이 서울고등법원 등 14개 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제주 강정마을 구상권 청구소송 재판 관련 정부 외압 여부를 놓고 극심한 신경전을 펼쳤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당시 판결을 내렸던 이상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참고인으로 부르라고 요구했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
18일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중회의실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김도읍 한국당 의원은 “이 부장판사가 유례 없이 변론 한 번 없이 강제조정 결정을 내리면서 혈세를 날리게 됐다”며 이 부장판사의 국감 참고인 출석을 요청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3월 국가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이 반대 집회로 지연돼 손해를 봤다며 집회 참석자 116명(주민 31명 포함)과 시민단체 5곳을 상대로 34억5,000만원의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정권 교체 후인 지난해 12월 이 부장판사가 재판장으로 있던 서울중앙지법 형사14부는 “정부가 소송을 취하하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고 정부는 이를 수용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이 같은 판단이 국고손실죄에 해당한다며 이 부장판사 독단의 결정이 아닌 정권 차원의 개입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판결이 확정도 안 된 상황에서 강정마을 주민에 대한 사면을 검토하겠다고 발언한 것을 의식한 주장이었다.
김 의원은 “개별 사건 처리에 관해 판사를 국감에 부르는 게 적절치 않다는 것은 알지만, 소송 당사자 중 85명이 시위꾼들이었는데 어떤 경위로 혈세를 날렸는지는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당 의원들은 이에 대해 “정부 개입 여부를 따지기 위해 법관을 참고인으로 부르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즉각 비판에 나섰다. 이춘석 민주당 의원은 야당 의원들의 주장을 반영해 이 부장판사를 출석하도록 유도하려는 여상규 법사위원장과 고성의 다툼을 벌였다. “동네 반상회에도 규칙이 있는데 진행 제대로 하라”는 이 의원에 대해 여 위원장은 “입 다물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외압 경과를 묻겠다면 우리도 사법농단과 관련해 요청할 사람이 많다”며 “하지만 영장 기각 판사 등을 일일이 불러 물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여당 의원들은 한국당의 잇따른 이 부장판사 출석 요구에 20여 분간 국감장을 전원 퇴장하기도 했다.
최완주 서울고등법원장은 문 대통령의 사면 발언에 대한 견해를 묻는 이은재 한국당 의원 질문에 “아직 재판 진행 중인데 만약 내가 사건 담당 법관이라면 힘이 빠졌을 것”이라고 우회 비판했다.
제주 강정마을 소송 외에 양승태 사법부 재판거래 수사 관련 잇딴 영장 기각도 도마에 올랐다. 다만 최근 여권 등에서 추진하는 ‘특별재판부’에 대해서는 위헌 가능성을 이유로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최 서울고등법원장은 특별재판부 도입 찬성을 유도하는 표창원 민주당 의원 질문에 “(재판거래 의혹에 연루되지 않은 판사들로 구성된 특별재판부라도) 위헌 논란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영장이 기각될 때마다 검찰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기각 사유를 공표하는 데 대해서도 법원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민중기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은 “검찰이 영장 기각 사유를 공개해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사실관계 과장이나 추측성 비판은 재판권 침해”라고 항변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