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0일 간담회에서 기존 오는 2020년으로 예정돼 있던 고교 무상교육을 내년 2학기로 앞당겨 단계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가운데 고교 무상교육을 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문제는 재원인데 교육계에서는 무상교육을 전면 실시할 경우 연 2조원, 단계적으로 실시하면 첫해 6,000억원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무상교육 조기 시행 찬성 측은 교육의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고 서민들 가계의 교육비 부담 절감을 위해 시행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설익은 정책으로 향후 행정력만 낭비할 우려가 크고 교육계의 지출 구조조정 노력 없이 무상교육을 위해 지방교육재정교부율만 높이려는 시도는 부당하다고 반박한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현재 ‘반값등록금’ 논의가 대학교육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에서 온 것이니만큼 고교부터 ‘공공화’하는 조치로써 무상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흥미롭겠지만 이 주장은 2011년 1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의 인터뷰에서 나왔다.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가 상당히 전향적인 주장을 하던 때임을 감안하더라도 이후 한나라당의 고교 무상교육에 대한 주장은 제법 일관적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시기 고교 무상교육은 국정과제 중의 하나였다.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2017년 고교 무상교육의 전면적인 실시를 발표하면서 2014년 도서·벽지에서부터 실시하겠다고 공언했다.
최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취임에 발맞춰 고교 무상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일부 교육계에서 찬반 입장이 대립하는 모양이다. 앞서 기술한 인터뷰 기사에 비하면 오히려 신임 장관의 정책은 전혀 새로운 게 없을뿐더러 선심형 교육정책도 아니다. 게다가 2019년 9월부터 단계적으로 실시하겠다고 하지 않는가. 새 정부 국정과제 설정에서 2020년 시행을 목표로 했던 것을 1년 앞당겨 시행하겠다고 한 것은 그다지 무모해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유 신임 장관이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 간사로 있을 때부터 시종일관 당·정·청과 교감을 가져왔던 정책이라 정책에 대한 애정과 진정성이 충분히 배어 있어 보인다.
정책을 앞당겨 추진하는 데 드는 재원 마련에 대한 문제는 당연히 제기될 수 있다.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은 고교 무상교육을 전면 실시하는 데 5년간 약 7조8,411억원이 든다고 주장한다. 전면 시행의 경우 1년간 약 2조원, 단계적 시행인 경우 약 6,000억원으로 추정하는 교육계 일각의 계산에 비한다면 야당의 추정치가 오히려 훨씬 작아 다행이다.
유 장관의 재원조달 계획에 따르면 국고예산의 투입 없이 현재 내국세의 20.27%로 고정돼 있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비율을 높이거나 다른 재원 확보방안을 마련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내국세의 21.14%로 상향 조정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법 개정안이 이미 발의돼 있기 때문에 여야 합의를 통해 법안이 통과된다면 2조원의 재원 확보는 가능하다. 특히 교부금이 내국세에 연동돼 세수가 늘어남에 따라 증가하는 ‘기형적인 구조’를 띠고 있기에 재원 확보에 불리하지도 않다. 급속하게 학생 수가 감소하는 추세는 전면적인 시행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고 있다. 아울러 저소득층을 비롯해 60% 이상의 고교생들이 이미 입학금과 수업료를 지원받고 있기 때문에 전면적인 정책 시행의 명분도 크다.
현재 OECD 회원국 35개국 중에서 고등학교 단계에서 무상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일본도 2010년부터 공립고의 무상교육이 전면 실시됐다. 중앙정부보다 더 일찍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은 올해부터 고교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기도 하다. 2016년 기준으로 고교 진학률이 99.7%에 달하기 때문에 고교 무상교육은 보통교육의 확립에도 기여할 수 있다. 2017년 민간이 부담하는 공교육비가 OECD 회원국 평균의 2배에 이르는 것은 우리의 경제 규모와 국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고교 무상교육은 국가 간 비교의 맥락에서 교육정책의 정상화에 가깝다.
여당 소속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7개 시도교육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고교등록금을 미납한 학생 수가 1만5,617명에 달한다. 수업료와 학교운영지원금을 포함해 1년간 200만원에 육박하는 등록금은 서민들 가계에 적지 않은 부담이다. 한편 고교 무상교육의 효과로 중위소득 기준 가구당 확보되는 약 13만원의 가처분소득이 결국 사교육비로 흘러간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소득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전체 계층을 설명하는 데 설득력이 없다.
고교 무상교육은 교육 부문에서의 보편적 복지에 해당한다. 이를 선별적 복지 정책과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는 국가교육 복지체제와 같은 구조적인 차원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세밀하게 다듬어야 할 과제다. 이를테면 고교 무상교육의 범위에 포함되는 수업료와 학교운영지원비 이외에 급식, 교복, 교과서 및 학용품, 비(非)교육과정, 교통비, 학교 밖 문화 활동 등을 지역 및 계층 요인과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선진국들의 고교 무상교육이 다양한 모습을 띠는 것은 이러한 세부적인 사항에서의 차이에 기인한다. 공교육의 확립을 국가 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는 선진국에서 보편 복지의 정당성과 그 실현은 이미 합의가 끝났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