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은 인생을 두고 “가까이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말했다. 눈앞의 역경과 고난은 인생을 비극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비극의 과정을 통과하며 체득한 교훈은 인생을 한편의 밝은 드라마로 재구성하는 토대가 된다. 우리가 비극을 바로 보고,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인간사에서 가장 혹독한 비극을 꼽으라 한다면 응당 죽음일 것이다. 죽음은 여러 형태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저 끝단의 비극은 살인이다. 전 세계 국가 중 살인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나라인 멕시코에서는 하루 평균 69명이 외력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죽음의 그림자가 일상에 드리운 곳이다.
‘100년 전 살인사건-검안을 통해 본 조선의 일상사’는 제목 그대로 100년 전 조선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추적한다. 검안이란 사망한 사람의 시신을 검시하고 작성한 살인보고서를 뜻하는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2,000여권의 책에 100년 전 이 땅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 낱낱이 기록돼 있다.
2,000여권의 책에는 약 500여건의 살인사건이 등장한다. 질투에 눈이 멀어 아내를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한 남편, 사위를 살해한 딸을 제 손으로 목 졸라 죽인 친정엄마, 병 치료를 위해 아이의 간을 빼먹은 나환자 등 인륜을 비웃는 범죄가 가득하다.
통상의 역사가 위인과 사건만을 취급하는 탓에 죽음의 역사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검안이 드러낸 100년 전 죽음의 역사는 현재와 다르지 않다.
100년 전에도 폭력은 일상 속에 녹아 있었고 기득권이 사회적 약자를 향해 휘두르는 칼은 빈번했으며 삼강오륜을 비웃는 패륜이 초래한 살인이 넘쳐났다. 또한 역사의 관성은 단단해서 지금이나 그때나 폭력과 착취의 대상은 여성, 어린이, 노인 등 사회적 약자였다.
저자가 역사의 서랍에서 살인의 목록을 꺼내 밝히고 싶은 것은 민중의 살아있는 역사다. 검안에는 시체검사 소견서인 시장과 함께 용의자 취조기록인 공초가 함께 실려 있는데 모든 진술이 구어체 그대로 기록돼 있어 민중의 일상을 세밀하게 엿볼 수 있다. 그 자체로 뛰어난 사료인 셈이다.
오늘날의 경찰서 형사라 할 수 있는 조선시대 조사관이 살인을 분석하고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은 이 책만이 줄 수 있는 재미다.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조사관은 현장에 출동해 시신을 검시하고 관련자들을 취조한 뒤 상부에 보고했다. 살인사건은 통상 두 차례 실시했는데 의심이 가는 경우에는 3차 혹은 그 이상의 조사를 실시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살인자라도 같은 무게의 죗값을 묻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리를 저버린 패륜은 더 많은 죗값을 치렀고 성리학이 세속화되면서 군자답지 못한 자는 누구라도 응징할 수 있다는 생각이 퍼지기도 했다. 살인사건과 이에 대처하는 공동체의 방법이 당대 사회의 관습 변화를 보여준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저자인 김호 교수는 조선시대 의학사를 연구하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조선의 과학과 사회를 연구하던 중 법의학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고 20여 년 전 규장각 서고에 보관된 검안을 읽으면서 조선사회의 범죄와 여기서 추출할 수 있는 법치와 덕치, 정치와 윤리의 상관관계를 고민한 결과를 이 책에 담았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2만2,000원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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