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부문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불거진 서울교통공사·인천국제공항공사 등의 채용비리 사태는 정부가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대로 현 정부 출범 직후에 정규직 전환이 전광석화로 진행됐지만 불공정 채용 등을 막기 위한 과속방지턱은 사실상 없었다. ‘채용비리 가능성에 각별히 유의하라’는 정부의 구속력 없는 지침은 현장에서 무시됐다. 야권에서는 “채용비리 원천봉쇄 방안을 마련한 뒤 점진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해도 늦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규직 전환 정책을 설계한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7월과 올해 5월 말 각각 1단계·2단계 공공 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1단계 가이드라인은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전환 정책을 예견한 불공정 채용도 우려되므로 가이드라인 발표 직전에 채용된 경우 보다 엄격한 평가 절차를 진행하라”는 간단한 내용만 담았다. 하지만 2단계에서는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채용 및 전환 과정이 공정하게 추진돼 ‘채용 비리’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며 “정규직 전환 정책을 기대하며 새롭게 채용된 비정규직 근로자가 있는 경우에는 그 근로자가 정당하게 채용됐는지 등을 면밀히 조사한 후 전환 대상자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는 보다 구체화된 지침이 제시됐다. 직원 친인척 108명이 무기계약직으로 입사한 뒤 정규직 전환한 서울교통공사와 협력업체 직원 채용비리가 발생한 인천공항공사 사례를 예견한 듯한 문구다.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채용비리 사태가 불거지면서 고용부는 정규직 전환 대상 공공기관에 추가 지침 전달을 긴급히 검토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기존 가이드라인에 채용비리 관련 내용을 추가하거나 별도 지침을 만드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면서도 “조치 여부나 방식 모두 확정된 게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고용부는 인천공항공사가 자체적으로 설치한 ‘협력사 채용비리센터’ 등의 사례를 눈여겨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고용부가 전체 공공기관의 채용비리를 감독할 권한이 없는데다 가이드라인은 말 그대로 구속력 없는 ‘권고’에 불과한 점이 문제다. 고용부 관계자는 “개별 기관의 채용비리는 해당 기관이나 감독권한을 가진 주무부처, 지방자치단체가 감시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협력사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는 인천공항공사 같은 경우는 전환 과정에 섣불리 개입했다가 불법 파견 논란에 휘말릴 수 있어 감시가 더 까다롭다”고 덧붙였다.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대상 공공기관과 해당 인원은 정부부처·지자체(1단계) 853곳 17만4,935명, 지자체 출연·출자기관과 공기업 지방 자회사(2단계) 600곳 1만5,974명에 이른다. 3단계로 분류된 민간 위탁 기관은 대상 기관과 인원도 결정되지 않았다.
야권에서는 정부가 공공 부문 정규직 전환의 속도전을 벌이느라 채용비리 가능성을 알고도 막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공공 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은 문 대통령이 지난해 취임한 직후인 5월12일 인천공항을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0)’를 선언하자마자 급속도로 진행됐다. 고용부는 불과 2개월 뒤 1단계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이어 지난달까지 1단계 대상 인원 중 88.3%에 달하는 15만4,526명의 공공 부문 근로자가 정규직 전환이 완료되거나 결정된 상태다.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은 “현 정권의 치적 과시를 위해 광범한 노사정 논의와 채용비리 방지 입법을 거쳐 점진적으로 진행해도 될 정규직 전환을 지나치게 밀어붙였다”며 “이번 채용비리 사태는 그 부작용”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1일 ‘가짜 일자리 고용세습 규탄대회’에 참석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특권 노조가 철의 삼각을 형성해 일자리를 약탈하고 젊은이의 미래를 빼앗았다”며 “문 대통령이든, 박원순 서울시장이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경고한다”고 말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도 “청년과 실직자는 2개월짜리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게 하면서 자신들은 알짜 일자리를 나눠 먹었다”며 “문 대통령은 즉각 전 기관의 고용세습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고 국정조사와 국회 청문회를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세종=이종혁기자 송주희기자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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