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결과는 놀라웠다. 왕 비둘기파인 하성근 위원 외에도 정순원·정해방 위원이 기준금리 인하에 가세하면서 3명의 소수의견이 나왔던 것이다. 시쳇말로 ‘금통위의 반란’이었다. 추천직 금통위원 5명 가운데 3명이 한은 수뇌부와 다른 의견을 냈다면 한은과 총재에게 반기를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놀라웠던 것은 한 달 뒤다. 김중수 총재를 필두로 6명의 위원이 금리 인하에 표를 던졌다. 매파 성향의 문우식 위원만 소수의견을 냈다. 그런데 김 총재는 금통위 개최 이전에 정부의 금리 인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주야장천 금리 정상화를 외쳤던 상황. “도대체 어디까지 내리란 말이냐”며 노골적인 반기를 들었던 그였기에 시장이 뒤집어지지 않으면 되레 이상할 터. 김 총재가 좌회전 깜빡이 넣고 우회전한 것은 두고두고 논란이 됐다.
훗날 총재를 지낸 이성태 한은 부총재는 2004년 11월 나 홀로 소수의견을 낸 적이 있다. 이것은 금통위원의 반기가 아니라 한은 집행부의 반란이다. 금통위 역사상 유일무이한 이 기록은 정부로부터 금리 인하 압박에 시달리던 박승 한은 총재를 대신해 이 부총재가 ‘항의성’ 소수의견을 냈다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금통위의 흑역사를 꺼낸 것은 최근 한은을 둘러싼 상황과 오버랩 돼서다. 첫 번째는 통화정책의 독립성 훼손 논란이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여야는 난타전을 벌였다. 야당이 정부의 금리 인상 압박을 도마에 올라자 여당은 박근혜 정부 시절의 금리 인하 압박으로 맞섰다. 오십보백보다. 금통위든 한은이든 반란의 추억은 정부의 입김이 근저에 깔려 있기는 마찬가지다.
두 번째는 소수의견의 상징성이다. 지난주 금통위에서 금리 동결에 반대해 인상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이 2명 나왔다. 소수의견이 나오면 시장에서는 통화정책 변화의 신호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소수의견의 법칙은 십중팔구 다음달 금통위에서는 맞아떨어질 것이다. 물론 소수의견의 등장이 반드시 정책변화의 신호였던 것만은 아니다. 두 명의 소수의견이 나와도 바뀌지 않은 적도 있다. 2011년 4월과 5월 김대식·최도성 위원이 연거푸 소수의견(인상)을 냈지만 정책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변이 없는 한 올해 마지막 금통위가 열리면 기준금리가 1.75%로 오를 것이다. 이주열 총재는 엊그제 국감에서 아예 “다음달 금리 인상 여부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이러고서 또다시 동결한다면 한은의 소통은 그것으로 끝장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내년부터다. 한은은 앞으로 올려도 욕먹고 안 올려도 욕먹게 돼 있다. 통화정책 결정이 늘 딜레마의 연속이지만 내년은 더 힘들 수 있다. 한미 금리격차와 가계부채 후폭풍을 염려하면 금융안정을 우선해야 하지만 실물경제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어쩌면 내년에는 다시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지도 모른다.
금통위원들은 대개 토론을 한참 하다 결국에는 소신을 접고 대세를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명분이야 한은에 힘을 실어주고 모양새도 좋다지만 눈치 보기와 결정장애에 다름이 아니다. 새내기일수록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관전포인트는 11월 금통위에서 만장일치의 결정이 나오느냐 여부다. 특별히 조동철 위원이 주목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간판 이코노미스트 출신 조 위원은 영락없는 왕 비둘기다. 지난해 11월 금리 인상 때도 유일하게 소수의견을 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박근혜 정부 시절 KDI 재직 때 대놓고 금리 인하를 촉구한 그였다. 그가 금리 인상에 동의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래도 비둘기 본색을 따라갔으면 좋겠다. 이일형 위원이 금리 인상 소수의견을 내면서 불붙인 통화정책 논쟁이 조 위원의 다른 판단과 맞물리면 절간 금통위를 깨울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정책 논쟁은 좀 더 치열해야 한다. 설령 4대3의 결정이 나오더라도 과거처럼 반란의 잣대를 들이대거나 총재 리더십과 결부시킬 것도 아니다. 되레 황금 비율일 수도 있다. 신참 임지원 위원도 비둘기도 매도 아닌 ‘원앙새’라고 돌려치지 않았으면 한다. 조류(鳥類)를 따지는 것부터 못마땅한 게 금통위원이라지만 ‘신도 부러워하는’ 자리에 있다면 그깟 감내 못할 것도 없다. 이래저래 힘든 시기가 다가온다.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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