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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중년의 고시'





2005년 1월 과천 정부종합청사가 시위대에 뚫리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전년 11월 치러진 제15회 공인중개사 시험에 응시했다가 탈락한 수천 명이 청사 앞 운동장에서 항의집회를 벌이다 전투경찰의 저지선을 넘어 청사 안에서 농성을 벌인 것이다. 1982년 과천청사 개원 이후 시위대 난입은 처음 있는 일. 흥분한 시위 참여자의 일부는 건설교통부 청사 유리창까지 깨고 난입하기도 했다. 고시만큼 어려웠던 시험문제가 화근이었다. 2000년대 들어 공인중개사 시험 합격률은 10~20% 수준이었으나 15회 합격률은 채 2%가 안 됐다.

후폭풍은 컸다. 전국적인 시위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당황한 정부는 부랴부랴 수급책 마련에 나섰다. 당시 국무회의에서 대책 마련을 지시한 국무총리가 이해찬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건교부는 대국민 사과와 함께 탈락자 재시험 일정을 내놓았다. 감사원도 감사에 착수해 그해 말 난이도 조절 실패의 책임을 물어 건교부 직원 등 7명을 징계하라고 지시했다.

1985년 첫 공인중개사 시험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복덕방을 운영하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다음 중 부동산이 아닌 것은 무엇인가’라는 식이다. 첫해 합격률 38%는 지금껏 불멸의 기록이다. 흥미로운 것은 첫 시험 때 합격자 10명 가운데 7명이 20대와 30대라는 점이다. 별다른 자격조건도 없고 웬만하면 합격한다는 소문에 대학 재학생과 입대를 앞두거나 제대한 학생들이 많이 응시했다.



공인중개사 시험은 외환위기로 일대 전환점을 맞는다. 인생보험 차원에서 자격증부터 따놓자는 직장인의 도전이 많아졌다. 아줌마 부대가 가세한 것도 이즈음이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중년의 고시’로 부르는 연유다. 외환위기 전까지 해마다 5만 명 안팎이 응시했으나 2000년 들어 10만 명대로 올라서더니 문제가 된 2004년에는 24만 명이 도전에 나섰다.

올해 공인중개사 시험(29회)이 주말인 27일 치러진다. 신청자 수가 23만 명을 넘어 과거 전성기 못지않다. 경기 탓인지 최근 2~3년간 응시자가 부쩍 늘어나고 20~30대 젊은이 비율도 증가하는 추세다. 한데 시험의 사회적 비용도 너무 많이 든다. 영업 중인 공인중개사는 10만 여명에 그치지만 지금껏 배출된 합격자 수는 이보다 4배가량 많다. 장롱 자격증이 30만 개쯤 된다고 하니 이래저래 일자리가 문제다.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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