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페블비치 골프링크스의 7번홀(파3)은 유명하다. 태평양 바다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그린을 내려다보며 공략하는 이 홀은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지만 진면모는 양면성이다. 길이 100m 정도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코스 중 최단 파3홀이지만 바람이 불면 ‘악마 홀’이 따로 없다. 강풍이 몰아친 지난 1992년 US 오픈 최종일에는 마지막 10개 조 선수 중 단 2명만 ‘온 그린’에 성공했던 일도 있다. 브리티시오픈(디오픈)이 열리는 바닷가 링크스코스는 북해 바람이 매년 쉴 새 없이 불어 선수들을 괴롭힌다.
바람은 자연을 경기장으로 사용하는 골프 게임의 한 요소다. ‘윈드 해저드’라는 말도 있다.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볼을 그린에 올리지 못한다고 해서, 비바람이 선수들을 괴롭힌다고 해서 페블비치나 브리티시오픈이 악평을 듣는 법은 없다. 오히려 톰 왓슨(69·미국) 같은 선수는 ‘링크스를 사랑한 남자’로 불린다. 대부분 온화한 날씨 속에 벌어지는 경기에 익숙하지만 바람과 변화무쌍한 일기 변화에 맞춰 적절한 코스공략 방법을 찾는 선수들의 지략 대결은 경기의 흥미를 높여주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욘 람(스페인) 등 유럽프로골프 투어를 거친 선수들이 미국 PGA 투어에서 세계 톱 랭커로 자리한 데도 바람과 자연의 힘이 한몫했다. 유럽 여러 나라를 돌며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면서 강인한 정신력과 기술적인 대처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국내로 눈길을 돌려봐도 바람의 단련을 받은 강자들이 많다. 제주 특유의 강풍 속에서 샷을 연마한 양용은(46)은 아시아 최초로 PGA 투어 메이저 챔피언에 올랐다. PGA 투어 멤버 강성훈(31)과 2부 투어 상금왕·신인왕을 찍고 이번 시즌 PGA 투어에 입성한 ‘괴물 신인’ 임성재(20)도 제주 출신이다.
28일까지 제주 서귀포 핀크스 골프클럽에서 계속되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은 뜻하지 않은 강풍으로 진행에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비바람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명승부를 완성해가는 KLPGA 투어 멤버들은 세계 정상급 선수로 성장할 소양을 갖춘 셈이다.
/박민영기자 my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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