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모르는 사람은 ‘권부(權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며 마냥 부러워한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영감님(국회의원) 안색만 살핀다고 지레짐작한다. 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외부 시선에 국회의원 보좌관들은 마냥 서운하다. 성질 사나운 의원을 만나면 갖은 수모를 견뎌내야 하고 국정감사 때에는 새벽 별을 친구 삼아 출퇴근해야 하며 4년마다 실직과 이직을 걱정해야 한다.
자신은 철저하게 숨기면서 의원에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돌려야 하는 것이 보좌관들의 운명이다. 인내(忍)를 가슴에 새기며 오늘도 꿈(夢)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숙명이다. 대한민국 국회 보좌관은 2,700명가량이다. 의원 300명의 입법과 의정활동을 돕는다. 의원실 한 곳에 4급 상당 보좌관 2명, 5급 상당 비서관 2명을 포함해 9명이 동고동락한다. 그들은 ‘정치(正治)’를 꿈꾸는 여의도의 미생(未生)이다.
국감은 ‘스타의원’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희생은 보좌관의 몫이다. 자유한국당의 한 보좌관은 “공공기관 고용세습 특종을 만들어내느라 수면시간이 3~4시간에 불과하다. 간이침대에서 자기도 하는데 새벽4시에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래도 다음날 조간신문에 모시는 의원 이름이 떡하니 나오면 신이 난다. 온종일 컴퓨터에 앉아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목과 허리의 디스크 이상을 호소하는 보좌관들도 많다. ‘국감특종’ 스트레스도 대단하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상임위 의원들은 질의 내용이 대부분 비슷한데 질의나 발언 순서가 밀리면 카메라의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된다”며 “어떤 의원들은 이를 가지고 불호령을 내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그들의 신분은 불안하다. 의원이 범죄와 불법에 연루되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야 하고 압수수색을 받기도 한다. 의원의 개인 비리에 도매금으로 범죄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 10년 경력의 한 보좌관은 “여러 차례 소송 경험이 있다. 항상 압수수색을 당할 수 있다는 경계감에 싸여 있다. 신분도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야당의 한 보좌관은 “내후년에는 총선이 있는데 지금 같은 정치구도라면 야당 의원들은 대폭 물갈이될 것으로 보인다”며 “다른 직장을 구해봐야 하는지 벌써 이런저런 고민이 많다”고 푸념했다.
여론의 뭇매도 매섭다. 국회의원 뒷배로 피감기관 수장으로 가거나 고위간부로 취업해 갑질 논란이 일기도 한다. 공무원의 경우 관련기관에 일정 기간 재취업이 금지돼 있지만 국회의원이나 보좌관은 제외된다. 지난달 정무위 소속 여당 의원 보좌관들이 금융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에 취업해 지탄을 받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도 왜 국회의원회관을 못 떠나는 것일까. ‘정’(正)을 만들겠다는 ‘꿈’(夢) 때문이다. 보좌관 생활에서 얻은 경험을 통해 총선 출마를 꿈꾸기도 하고 시장·군수 등 자치단체장에 출사표를 던지기도 한다.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의 등을 토닥여주겠다는 순수한 철학을 가진 사람도 있고, 그야말로 입신양명과 출세를 위해 인고의 세월을 견디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어제보다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인(忍)을 가슴에 새긴다./송종호기자 joist1894@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