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양승태 사법부 재판거래 의혹의 핵심 인물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구속에 성공하면서 이른바 ‘윗선’ 수사의 물꼬가 트였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을 재판거래·법관사찰·공보관실 운영비 유용 등 각종 의혹의 실무 책임자로 보고 있다. 게다가 임 전 차장의 법원행정처 재직 기간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물론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등과 겹친다. 그만큼 그의 진술에 따라 윗선 수사의 향방이 갈릴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임 전 차장이 혐의를 꾸준히 부인하고 있는데다 구속적부심까지 검토 중인 만큼 앞으로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28일 임 전 차장을 불러 조사했다. 법원이 그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지 하루 만이다. 검찰은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범죄사실 중 상당한 부분에 대해 소명이 있다”고 판단함에 따라 임 전 차장을 상대로 청와대·국회의원과의 재판거래, 법관 사찰 등 각종 혐의에 대해 추궁했다. 특히 재판거래 의혹은 윗선의 지시 없이 이뤄질 수 없는 ‘조직적 범죄’로 판단하고 차한성·박병대·고영한 등 전직 법원행정처장, 나아가 양 전 대법원장의 관여나 지시가 있었는지도 집중 조사했다. 검찰은 각종 의혹이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승인이나 묵인, 지시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고 보고 윗선에 대한 소환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임 전 처장이 4차례에 걸친 검찰 조사 과정에서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고 일부 시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르면 다음달 초 박병대·고영한·차한성 등 전직 대법관에 이어 양 전 대법원장의 소환 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임 전 차장이 구속적부심 청구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검찰이 뜻밖의 벽에 부딪힐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구속적부심이란 이미 구속된 피의자가 법원에 구속의 적법성을 다시 따져달라고 요청하는 제도다. 법원이 구속의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할 경우 임 전 차장은 풀려나게 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임 전 차장이 구속적부심 청구를 고심 중인 만큼 검찰에 주어진 구속수사 기간이 제한적일 수 있다”며 “검찰이 구속적부심에 따른 석방까지 고려해 앞으로 임 전 차장에 대한 조사에 속도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안현덕기자 alwa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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