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의 암운이 짙어지던 1938년 11월7일 독일 외교관이 유대인 청년에게 파리에서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단순 저격 사건으로 보였던 이 사건은 나치에 유대인 탄압의 더할 나위 없는 빌미가 됐다. 11월9일부터 이틀간 독일과 독일군이 강제 점령한 오스트리아, 체코 수데테란트 유대인들의 집과 가게·건물이 나치 친위 돌격대(SA)의 조직적인 약탈과 파괴에 노출됐다. 특히 267개 유대인 회당 ‘시너고그’는 집중 공격 대상이었다. 거리는 시너고그와 상점들의 깨진 유리로 가득 차 마치 수정처럼 반짝였다. 나치의 유대인 말살 정책의 서막을 예고한 ‘크리스탈나흐트(Kristalnacht·수정의 밤)’였다.
시너고그는 유대 성전이 사라진 후 유대인들의 정신적 구심점이 된 예배 장소다. 기원전 3세기경 그리스 델로스섬에 사마리아 회당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2,4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고유의 율법과 관습을 고수하고 선민의식을 강조하는 유대인들의 집회를 기존 지배층으로서는 용납하기 힘들었을 터. 로마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유대교에 대한 공격을 인정한 4세기 말 이후 근대까지 세계 각지에서 시너고그 파괴 행위가 잇따른 것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이집트와 시리아 같은 아랍 국가들은 이를 칙령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시너고그의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스라엘 건국과 팔레스타인 사태 이후에는 테러가 탄압을 대체했다. 시간과 장소·대상 그 어느 것도 예외는 아니다. 2002년 튀니지 휴양지 제르바섬에서는 관광객이 희생됐고 1년 뒤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폭탄 테러로 3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왔다. 이민자에게 관대했던 프랑스도, 테러의 불모지처럼 여겨졌던 덴마크도 유대인 회당에 대한 폭탄 공격에 떨어야 했다. 십자군 원정 이후 술탄 살라딘이 보여준 유대인 포용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시너고그에 또다시 총성이 울렸다. 지난주 말 토요예배가 진행되던 미국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의 한 유대인 회당에서 총기 난사로 11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일어났다. 범행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범인이 총기 난사 직전 “모든 유대인은 죽어야 한다”고 외친 것을 보면 반유대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극단적 치우침을 배격하고 용서와 화해로 향하는 사회로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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