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립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치·권력·정책 세 가지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연정이라는 한 지붕 아래 모였다고 하더라도 지향점이 제각기 다른 정당들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필연적으로 이합집산이 있을 수밖에 없다. 1949년 첫 총선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독일에서 무려 스물세 차례나 연정이 구성된 것은 이 때문이다. 때로는 적과의 동침도 이뤄진다. 1966년 12월1일 보수 기민련과 진보 사민당 간의 역사적인 대연정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의석수는 기민련이 250석, 사민당이 217석, 중도세력인 자민당이 50석이었으니 누가 봐도 캐스팅보트는 자민당이 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협상을 맡은 기민련의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거의 선택은 뜻밖에도 사민당이었다. 만년 야당을 지낸 탓에 수권 경험이 부족해 고민하던 사민당도 키징거의 제의를 선뜻 받아들였다. 사민당 소속의 빌리 브란트 당시 부총리는 연정에서 쌓은 국정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3년 뒤인 1969년 정권 교체를 이뤄낸다. 2005년 11월22일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 자리에 오른 앙겔라 메르켈은 이후 13년 동안 네 차례나 연정을 구성한다. 이 가운데 세 번이 기민련-사민당 간의 대연정이다.
최근 메르켈 주도의 대연정이 위기를 맞고 있다. 난민정책을 둘러싸고 연정 내에서 갈등이 증폭되자 메르켈이 2021년 정계 은퇴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만일 연정의 한 축인 사민당이 정체성 확보 차원에서 대연정을 뛰쳐나갈 경우 메르켈이 2021년 이전에도 낙마할 가능성이 있다. 경제강국 독일의 대연정을 뒤흔들 정도인 것을 보면 글로벌 난민 문제가 다루기 쉽지 않은 이슈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오철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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