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으로 다가온 미국 중간선거 향배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하원 435석 전체와 상원 35석, 주지사 36명을 뽑는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세계 경제와 정치 흐름이 뒤바뀔 수 있어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높다. 우리나라도 미중 무역전쟁의 최대 피해자인데다 북한 비핵화 문제까지 겹쳐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기는 마찬가지다. 시장에서는 저마다 득실을 따지느라 분주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독불장군식 성향으로 볼 때 기존 정책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는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로이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미국 중간선거를 놓고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중간선거에 참여하는 동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희망·변화 등 긍정적인 항목을 제치고 ‘분노(anger)’가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한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불법 이민자들의 아동 강제 격리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자신들을 투표장으로 이끈다고 응답했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불법 이민에 따른 사회 불안에 가장 격분했고 대통령 탄핵 시도 역시 분노 대상으로 삼았다. 심지어 트럼프를 찍은 가족·친구들과 절연했다는 민주당 지지자도 35%에 달했다. 똑같은 사안을 정반대로 해석하는 분노와 증오가 선거 판세를 가르는 역설적인 상황이 빚어진 셈이다. 최근의 반유대 총격 사태나 폭탄 소포 사건에도 이런 사회 저변의 기류가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미국 선거에는 으레 네거티브 캠페인이 등장하기 마련이지만 정치인들이 증오와 대립을 부추기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얼마 전 캔자스주 연설에서 민주당을 ‘성난 폭도(mob)’로 지칭하며 “민주당에 투표하는 이들은 방화범”이라고 위협했다.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을 공격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적을 만들어내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인 언행이 폭력적인 정치 풍토를 조장하고 미국의 분열을 가속화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민주당 역시 미국 사회를 슬픔에 빠트린 총격 사건이 대통령 탓이라며 책임론을 들고 나와 선거운동에 활용하기는 마찬가지다. 민주주의 모델로 불리던 미국이 어쩌다 분열의 나라로 전락했는지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작금의 우리 사회를 돌아봐도 분노와 갈등의 구도는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PC방 살인 사건 같은 사회적 범죄 피해가 따르고 공공기관의 만연한 고용세습이 불거지면서 ‘코리안 앵거’라는 말까지 등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회·경제적 소외와 박탈감이 어우러져 사회적 분노로 표출된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하긴 취업이 제대로 안 되는데다 일자리에서 쫓겨나고 가게도 꾸려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무도 자신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체념과 허탈감이 팽배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를 수용하고 합리적 타협을 이끌어내야 할 정치권마저 내 편 아니면 적이라는 식으로 몰아붙이며 진영이나 계층 간 분열과 적대감을 부추긴다는 사실이다. 정치권의 담론이 일반 서민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것도 그렇거니와 우리 경제가 언제 어렵지 않은 적이 있느냐고 맞받아치는 대목에서는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수많은 문명의 흥망성쇠를 연구한 끝에 제국의 붕괴 원인으로 내부 갈등을 지목했다. 역사란 ‘창조적 소수’에 의해 창조되고 성장하지만 한때의 ‘응전’에 성공한 이들이 자신의 능력과 방법론을 우상화하면서 교만과 일방주의에 빠져 분열과 해체의 전철을 되밟는다는 것이다. 세상이 달라졌는데도 과거와 같은 체제와 제도에 집착하면 ‘비창조적 다수자’들의 분노와 비난을 불러일으켜 스스로 무너진다는 얘기다.
용비어천가 125장에는 ‘성신(聖神)이 대를 이어도 경천근민(敬天勤民)해야 나라가 굳어질 것’이라며 과거의 공덕만 믿고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고 전하고 있다. 이 시대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ss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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