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질런트 에이스 유예 결정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작년 비질런트 에이스 훈련 때 북한이 미 공군 스텔스 전투기·폭격기의 한반도 전개에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인 만큼, 훈련 강행으로 남북 및 북미의 비핵화 대화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2015년 ‘Pen-ORE’(한반도 전시작전 준비훈련)라는 명칭으로 처음 실시된 비질런트 에이스는 매년 12월 한미 공군 항공기들이 대규모로 참가한 가운데 실시됐다. 특히 북핵 위기에 대응해 공세적으로 진행된 지난해 12월 훈련에서는 미 공군 스텔스 전투기 F-22 6대, F-35A 6대, F-35B 12대와 장거리 전략폭격기 B-1B ‘랜서’까지 이틀 연속 투입됐다.
지난해 고강도 대북 압박의 일환으로 실시된 비질런트 에이스 훈련에 대해 북한은 “핵전쟁 국면으로 몰아가는 엄중한 군사적 도발”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이와 달리 올해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남북 및 북미 대화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대규모 연합공중훈련 연기 결정이 내려졌다.
비질런트 에이스 유예는 미측이 먼저 제안했다. 매티스 국방부 장관은 아세안확대국방장관회의(ADMM-Plus)를 계기로 지난 19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미국방장관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올해 12월 첫째 주 예정됐던 비질런트 에이스를 유예하자고 제안했다.
정 장관은 이에 대해 외교적 노력에 대한 군사적 지원 원칙에 공감하면서도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하려면 비질런트 에이스를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시행하는 조정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비질런트 에이스 유예 발표는 이번 SCM으로 미뤄졌다.
한미 양국은 이에 따라 한미는 비질런트 에이스를 유예하면서도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하기 위해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연합공중훈련을 하기로 했다. 한국 공군과 주한 미 7공군이 각각 공중훈련을 하면서 한반도 밖에 배치된 미 공군이 전개하지 않는 방안이나 한국 공군이 미 공군이 각각 훈련하면서 데이터 링크 등을 통해 연합훈련의 효과를 내는 방안 등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비질런트 에이스 유예 결정은 6·12 북미정상회담 직후 북한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한미연합훈련 중단 결정과 맥을 같이 한다. 올해 들어 을지프리덤가디언(UFG)과 2개의 한미 해병대연합훈련(KMEP·케이맵), 그리고 비질런트 에이스까지 총 4개의 한미 연합훈련이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올해 마지막 대규모 연합훈련이 이 훈련이 유예되면서 관심은 내년 3월로 예정된 키리졸브(KR) 연습과 독수리(FE) 훈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3대 연합훈련 중 하나인 키리졸브 연습은 한반도 전면전에 대비한 연합방위태세 점검과 전쟁 수행절차 숙달에 중점을 두고 있다. 훈련 형태는 전구(戰區·Theater)급 지휘소연습(FTX)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의한 모의 워게임(war game)이 주를 이룬다. 비슷한 형태의 UFG 연습이 올해 8월로 예정됐다가 유예됐기 때문에 비핵화 협상이 원활히 진행되면 KR 연습도 유예될 가능성도 있다.
독수리훈련은 실제 병력과 장비가 움직이는 야외기동훈련(FTX)이다. 최근 연합기동훈련, 해상전투단훈련, 연합상륙훈련, 연합공격편대군훈련 등 연합작전과 후방지역 방호작전 능력을 배양하는 훈련으로 범위가 확대됐다. 한미 양국은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훈련의 유예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연합훈련의 유예 여부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외교적 노력에 대한 군사적 지원과 이와 상충하면서도 연관된 연합방위태세 유지라는 두 가지 원칙을 고려해 결정된다”며 “내년 연합훈련에 대해서는 아직 어떤 결정도 내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한미 양국이 이번 SCM에서 내년부터 전작권 환수에 대비한 한국군의 연합작전 주도 능력을 평가하는 기본운용능력(IOC) 검증에 돌입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내년에 적어도 한 차례 이상의 전구급 지휘소연습이 필요한 상황이다. 군의 한 관계자는 “IOC 검증은 내년 UFG 때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만약 KR과 UFG 등 전구급 한미 연습이 모두 유예되면 한미는 IOC 검증을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연습을 실시해야 한다.
또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간 대화가 차질을 빚을 경우 각종 훈련이 재재될 가능성은 여전히 살아 있다. 미국은 대화를 진행하면서 훈련의 지속적인 유예 여부를 협상과 압박 카드로 활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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