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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대법원 '징용 배상' 판결 진의와 향후 전략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정치학

1965년 한일기본조약 조항

일제강점기 '불법' 해석 가능

日 지불 5억弗도 보상금 불과

국제사회에 정당성 알릴 필요





지난 10월30일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에 시달린 징용자에 대해 피고 신일철주금이 1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일본 측은 즉각 반발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는 얘기를 비롯한 각종 협박성 발언을 내놓았다.

앞으로 한일관계가 경색될 우려가 있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선 이번 판결은 보상금이 아니라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1965년 한일 양국 정부는 일본이 한국에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를 지불함으로써 ‘양 체결국 및 국민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중략)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음을 확인한다’고 합의했다. 그리고 이 금액에는 한국 정부가 개인에게 지불해야 할 보상금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당시 박정희 정권은 경제협력 명목으로 받은 5억달러로 경제개발을 했고 개인에 대한 보상금은 극히 일부만 지급했다. 그러므로 2005년 노무현 정부는 위안부 문제, 사할린 동포 문제, 원폭 피해자 문제를 제외한 모든 청구권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해결됐음을 표명하면서도 박정희 정권 때 지급하지 않았던 보상금을 지불하기 시작했다. 그런 지급기구가 2016년까지 운영됐다.

그런데 1965년 청구권협정에서 한국이 받은 돈의 성격은 어디까지나 보상금이지 배상금이 아니었다. 보상이란 합법행위로 인한 손해, 배상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보전해주는 것이다. 즉 보상금이란 잘잘못을 가리지 않고 도의적으로 주는 돈이지만 배상금은 가해자·피해자를 가려 가해자가 사죄의 뜻으로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돈이다.



그러므로 현재까지 개인에게 어떤 금액이 지급됐다고 해도 그것은 배상의 뜻은 없고 도의적인 보상금이었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그것은 일본 측을 가해자, 한국 측을 피해자라고 분명히 한 셈이다. 대법원은 판결의 근거를 ‘일제강점기가 불법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1965년 체결된 청구권협정의 상위 문서인 한일기본조약에는 일제강점기가 ‘불법’으로 해석될 수 있는 조항이 존재한다. 한일기본조약 제2조는 ‘1910년 8월22일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서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은 이미 무효임이 확인된다’고 기재됐다. 이 구절의 ‘이미 무효’ 부분을 해석할 때 일본 측은 일본의 패전으로 무효가 됐고 1945년까지의 일제강점기는 합법이었다고 해석해왔다. 그러나 한국 측은 ‘이미 무효’를 일제강점기가 ‘원천적으로 무효’였다고 해석했다. 한국어와 일본어로는 이 부분의 뜻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 그런데 한일기본조약의 정문은 영문이다. 그러므로 해석에 논쟁이 있을 경우 정문인 영문판을 봐야 한다.

‘이미 무효’에 해당하는 영문은 ‘already null and void’다. 이 문구가 논의됐을 때 한국 측은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뜻을 갖는 ‘null and void’를 조문에 사용할 것을 주장했는데 일본 측은 타협안으로 앞에 ‘already’를 두는 것을 제안해 결과적으로 ‘already null and void’가 됐다. 이 문구를 직역하면 ‘이미 원천적으로 무효’가 된다. 1965년 당시 한국 측은 이 문구에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뜻이 담겨 있음을 영문학자 등에게 확인한 다음 일본 측 제안을 수용했다. 그러므로 한일기본조약 제2조는 일제강점기를 ‘원천적으로 무효’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어나 한국어로 볼 때는 ‘이미 무효’라고 하면 언제부터 무효가 됐는가가 쟁점이 되지만 영문으로 해석할 때는 그런 쟁점이 생기지 않는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바로 이 부분을 정확히 하면서 배상금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 판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일본은 계속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와의 차이를 인정하고 일본과 국제사회에 그 정당성을 알려야 한다. 단순히 ‘미래지향적으로 해결하자’는 일본 측의 요구를 수용할 필요는 없다. 법적 정의가 무엇인지를 심사숙고해야 하고 관계자들은 긴 역사적 안목으로 이번 판결을 어떻게 국가적으로 마무리하느냐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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