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결(22·삼일제약)의 우승은 캐디가 먼저 예감하고 있었다. 전담 캐디의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결이한테 꼭 축하한다고 전해달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박결의 캐디는 경기에 영향을 미칠까봐 전날 밤의 꿈을 끝까지 얘기하지 않다가 최종 라운드 18홀을 마치고 박결의 어머니에게만 “느낌이 좋다”고 귀띔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꿈같은 우승이었다. 챔피언 조보다 거의 1시간이나 먼저 공동선두로 경기를 끝낸 터라 박결은 우승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선두 그룹이 타수를 줄일 만한 홀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두권 선수들은 하나같이 고전했고 박결은 연장도 치를 것 없이 105전106기에 성공했다. 기다리는 동안 연장전 패배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우승 못해도 좋으니 연장만 가지 마라’고 바랄 정도로 떨었다고.
박결은 “대회 개막 직전에 엄마가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밤9시5분 출발편으로 끊었다기에 왜 그렇게 늦은 비행기를 끊었느냐고 툴툴댔다. 우승은 기대조차 하지 않고 저녁6시30분 비행기로 앞당기려다 좌석이 없어서 못했는데 시상식 마치고 가니 9시 비행기가 딱 맞더라”며 웃었다.
다소 차가운 이미지에 악바리일 것만 같은 박결이지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오히려 ‘순둥이’에 가깝다고 말한다. 댓글 등 주변 사람들 얘기에 쉽게 마음을 다치고 작은 실수 하나도 가슴에 묻어두고 잘 비우지 못하는 성격이다. 박결은 “줄리 잉크스터(58·미국)처럼 꾸준히 오래 현역 생활하는 분들이 롤모델이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1m 안쪽 퍼트를 놓칠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파서 이 스트레스를 그렇게까지 오래 받고 싶지 않다”며 또다시 웃었다.
골프장 밖에서 가장 즐기는 것은 ‘먹는 것’이다. 해산물은 못 먹고 가장 좋아하는 것은 고기다. 앉은 자리에서 스테이크를 1㎏ 가까이 먹기도 한다고.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동기생인 박지영과는 하루 날을 잡고 고깃집에서 ‘먹성 배틀’을 붙기도 했다. 선배들이 따라와 내기를 걸 정도로 화제가 됐던 한판이었다. 박결은 “전지훈련을 가면 밤에 숙소 침대에 누워서 움직이지 않고 먹방 동영상을 보는 게 낙”이라고 했다.
예쁘다는 말보다 더 기분 좋은 칭찬은 뭐냐는 물음에 “예쁜데 볼도 잘 친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박결. 그는 “데뷔 후에 상 탈 일이 없고 우승도 없어서 연말 시상식에 한 번도 못 가봤다. 올해 첫 참석이라 벌써 설렌다. 날씬해보이는 드레스를 잘 골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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