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육군이 M2·M3브래들리 전투차량을 전면 교체할 방침이다. 미 육군은 지난달 육군협회가 주최하는 방산전시회에서 이 같은 방침을 밝혔다. 미 육군의 주력 보병전투차 교체는 미군 자체의 물량이 많은데다 다른 나라들의 추가 구매 물량도 잇따를 것으로 전망돼 메이저급 기갑차량 회사들의 수주 총력전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기술적 측면에서도 주목된다. 미 육군의 요구 성능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미 육군이 제시한 기준은 향후 세계 장갑차량 개발과 기술 발전의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자체기술 개발로 이 같은 방향성에 발맞추며 세계시장 도전을 모색하고 있다. 교체되는 브래들리는 두 가지 용도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동맹국에 공여하거나 포탑을 제거한 뒤 M113장갑차를 대체할 병력수송용 장갑차 차체로 전용이 가능하다.
“유무인 겸용·시가전 생존성 높이자”
고성능 브래들리 과감히 교체 추진
“美 제시 기준이 장갑차 미래방향”
◇왜 바꾸나=M2브래들리 보병전투차는 여전히 쓸 만한 무기다. 웬만한 국가는 보유하지 못할 정도로 비싸다. 대당 317만달러. 무장도 강력하다. 토우 대전차 미사일을 탑재하고 25㎜ 기관포를 주포(부포는 7.62㎜ 공축 기관총)로 삼았다. 별도의 체인으로 급탄되는 방식인 브래들리의 기관포는 구동구권의 전차를 제외한 어떤 장갑차량도 격파할 수 있었다. 7.62㎜ 공축 기관총도 달렸다. 걸프전에서는 브래들리 보병전투차가 이라크군 전차를 상대로 우월한 전투를 치른 적도 있다. 승무원 3명에 하차보병 6명이 탑승한다.
M3브래들리는 똑같은 차체에 무장을 갖췄지만 탑재 미사일과 탄약이 많은 기갑부대용. 기병전투차로 불린다. 주로 정찰임무를 담당하는 하차보병이 2~3명으로 차내에 정찰용 오토바이를 적재하는 경우도 있다. 누적 생산량은 7,000량이 넘지만 미군이 운용하는 M2는 주방위군용 639대를 합쳐 1,838대다. M3기병전투차는 예비용 259대를 포함해 712대에 달한다. M2와 M3를 합치면 2,600여대의 신규 수요가 발생하는 셈이다. 미군은 앞으로 브래들리처럼 보병용과 기병용을 구분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유무인 겸용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미국이 서방 선진국 기준으로 봐도 아직 막강한 위력과 고성능을 자랑하는 브래들리 보병전투차를 교체하려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첫째, 러시아가 속속 선보이는 기갑전투차량을 상대하기가 버거워졌다. 특히 두꺼운 장갑을 자랑하는 신형 T14아르마타전차의 차체를 그대로 전용한 T15보병전투차와 반응장갑을 두른 쿠르가네츠25보병전투차에 열세라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두 번째는 유무인 겸용, 장갑의 선택적 착용과 도심 시가전에서도 생존성이 높아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브래들리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저항군의 발사관(RPG)이나 조잡한 급조 폭발물에 150대나 파괴됐다는 약점이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군이 운용하는 M2브래들리는 후티 반군에 격파당하기도 했다.
◇삼수생 차기 보병전투차, 이번에는 실현 가능성 높아=미 육군은 그동안 보병전투차 교체에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1999년 미래전투체계(FCS)를 개발하며 전차와 자주포·보병전투차·수송용장갑차 등의 차제를 공통으로 사용한다는 계획 아래 180억달러를 투입했으나 2008년 취소하고 말았다. 보병장갑차의 중량이 웬만한 전차의 2배인 85톤에 이를 만큼 기술적 문제도 많았다. 후속사업으로 지상전투차량(GCV) 체제를 추진했으나 이 역시 2014년 무산됐다. 이후 미 육군은 기존 브래들리 개량 후 계속 사업과 신형 도입 두 가지를 놓고 고민하다 최근 결정을 내렸다. 늦어도 오는 2026년에는 교체할 계획이다.
링스·CV90 마크Ⅳ·그리핀Ⅲ 등
英·스웨덴·獨 기업 수주 3파전
◇영국·스웨덴·독일 다국적기업 3파전=삼수 끝에 되살아난 차기 장갑차량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무인기 운용이 가능하고 대전차미사일을 탑재하며 유럽계 회사와 합작이라는 점이다. 독일 라인멘탈사의 링스는 미국 레이시언사가 합작선이다. 미국화한 영국 다국적기업인 BAE시스템스는 스웨덴이 개발한 베스트셀러 CV90의 최근 개량품인 CV90 MARK Ⅳ를 내세웠다. 유일하게 미국 회사의 개발품으로 보이는 제너럴다이내믹사의 그리핀Ⅲ도 실은 아스코드(스페인), 아식스(영국) 장갑차의 개량형으로 분류된다.
◇최후의 승자는=누가 이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각각 장점과 단점이 뚜렷하다. 스웨덴에서 태어난 CV90 MARK Ⅳ는 26년간 검증된데다 톤당 마력이 높아 기동성이 좋고 하차보병 8명이 탑승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중량도 최대치(증가장갑 부착) 40톤으로 과도하지 않다. 반대로 링스는 승차보병을 9명까지 태울 수 있으나 최대 중량이 55톤으로 K1전차보다도 무겁다. 과도한 중량에 따른 유지 비용과 수송기 탑재 제한, 교량사용 불가능 때문에 미 육군은 최근 들어 과중량을 연달아 경고하고 있다. 신개발품이어서 사용 국가도, 검증된 적도 없다는 것 역시 단점으로 꼽힌다.
미세한 우위를 가졌다는 그리핀Ⅲ는 하차보병이 6명이라는 점을 빼고는 신기술이 많이 적용됐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영국과 스페인에서 계열화 차량으로 간주할 수 있는 보병전투차들이 큰 문제 없이 운용된 전력도 있다. 무엇보다 차장과 조종수·사수 등 승무원 3명이 고정불변이 아니라 2명으로 줄이고 무인화로 대체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타격력이 가장 강력한 50㎜ 주포를 탑재하고 주포의 부양각을 85도까지 끌어올려 고층빌딩에 매복한 저격수나 적군에 대한 대응이 보다 수월하다. 다만 각사가 가진 특장점을 독점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최종 선정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호주 육군 대량 발주에 맞춰
한국도 ‘AS21’로 수출 도전
◇한국도 AS21로 세계시장 도전 의지=우리나라도 서방 선진국 수준에 빠지지 않는 보병전투차 K21을 생산, 운용하고 있으나 미군이 새로 확보하려는 신형 보병전투차 수준에는 못 미친다. 국내 개발 동향은 두 가지 방향으로 읽힌다. 국방과학기술 당국이 차세대 궤도식 장갑차량에 대한 동향조사 및 기초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방산업체인 한화디펜스는 업체의 자체개발 형식으로 ‘AS 21 레드백’이라는 신형 차량을 개발해 세계시장 도전을 모색하고 있다.
AS21은 K21을 확대, 개량한 것으로 실물 대비 축소 모형이 호주에서 9월 열린 방산전시회에 등장하며 존재가 알려졌다. 한화디펜스는 차세대 장갑차량을 연구하다 호주군의 대량 발주에 맞춰 AS21을 선보였다. AS라는 명칭 자체가 호주군용이라는 뜻이다. 레드백은 등이 붉은 호주의 독거미. 외형으로도 AS21은 K21보다 보기륜(바퀴)이 하나 많아 7개다. K200을 확대 개량하면서 6개로 늘어난 보기륜이 이번에는 7개가 됐다. 크기도 커졌다. 중량이 40톤에 이른다. 가장 높은 수준의 방호력을 원하는 호주 육군의 요구 성능을 맞췄다. K21의 고유한 특성인 수상도하 기능을 없애는 대신 방어력 강화에 치중했다. 대전차미사일을 장착하고 능동방어 시스템도 갖췄다.
다만 힘든 경쟁이 예상된다. 메이저 방산업체들이 수주경쟁을 벌이고 있어서다. 호주 육군이 431대를 운용하는 M113장갑차를 450여대의 미래형 보병전투차로 대체하려는 호주의 대규모 획득사업에는 미 육군의 차기 보병전투차 수주경쟁을 펴게 된 3대 메이저가 모두 뛰어들었다. 현재로서는 독일 라인멘탈사의 링스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호주 육군이 다양한 파생형을 원한다는 점에서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 내년 3월 초 제안서를 접수한 뒤 8~9월께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될 것으로 보인다. 한화는 이제 막 사업에 뛰어든 후발업체지만 전력을 다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한화는 호주에 대한 K9자주포 수출 진행 과정에서 얻은 각종 데이터와 경험을 자산으로 삼아 K9을 유럽과 아시아·중동 등에 수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한국 육군이 새로운 장비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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