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가 책을 안 읽어요.” “작가님, 책을 싫어하는 아이가 책을 좋아하도록 만들 수 있는 무슨 비법이 없을까요?” 나의 인문학 강연이나 글쓰기 특강을 들으러 오시는 학부모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바로 ‘어떻게 아이들에게 책 읽는 습관을 길러줄 것인가’이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어야 내적 성장과 정서 발달에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유투브가 어린이들의 오감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과연 어떻게 책을 읽힐 것인가’는 매우 어려운 과제가 되어버렸다. 나는 부모님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꼭 아이에게 혼자 책을 읽으라고 시키지 마시고, 엄마아빠가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시면 좋아요. 책을 읽어줄 수 없을 때는 그냥 어른들이 알고 있는 옛날이야기나 전래동화를 직접 들려주세요. 엄마아빠의 개성있는 해석과 독창적인 몸짓을 마음껏 섞어서 이야기해주면 훨씬 더 좋지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부모님들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시며 ‘시간이 없다’고 안타까워하신다. 하지만 꼭 엄청나게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이불을 덮어주며 토닥토닥 배를 두드려주는 시간, 아이와 손을 잡고 마트나 시장에 장을 보러 갈 때, ‘부모가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의 따스함을 아이들이 느낄 수만 있게 해준다면, 자연스럽게 ‘책’이라는 최고의 친구를 사귈 수 있는 문이 열릴 것이다.
‘귀로 듣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을 때 아이들은 언젠가 ‘나 혼자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찾을 것이고,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잔뜩 실려 있는 종이책을 찾게 된다. 그러니까 ‘문자’와 ‘종이’라는 형태를 고집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생각보다 다양한 ‘살아있는 책들’과 만날 수 있게 된다. 우리 자신이 직접 살아 움직이는 책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문자중심의 언어생활에 익숙하지 않은가. 음악을 듣고 저절로 흥얼거리며 따라하듯 자연스럽게 말을 배우는 아이들은 문자 없이도 충분히 풍요로운 언어생활을 한다. 활자 없이도 언어를 이해하고, 종이책 없이도 이야기를 사랑하는 어린이들의 천진무구한 상상력에서 우리의 잃어버린 순수와 창의성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친구 부부의 아이는 유아기부터 책 ‘보는’ 것을 워낙 좋아해 어른들이 모두 그 아이가 책을 ‘읽을 줄 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집 애는 천재인가 봐요. 어쩜 네 살짜리가 그렇게 차분히 앉아서 오랫동안 책을 읽을 수 있죠?” 친구 부부는 당황했다고 한다. 사실 소녀는 글자를 몰랐던 것이다. 글자를 알아서가 아니라 그저 ‘그림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글자를 몰라도 책을 읽을 수 있다. 동화책에는 글자보다 훨씬 커다랗고 강력한 색채를 뿜어내는 그림들이 가득하니까. 그림을 유심히 바라보고 관찰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창의력은 쑥쑥 자란다. 아이들은 글자만 읽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도, 향기도, 촉감도 읽어낼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아이들은 ‘눈’만이 아니라 온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 활자중심의 텍스트에 의사소통을 집중시키는 것, 유투브에 세상에 대한 모든 배움의 기회를 집중시키는 것은, 아이들에게 세상 모든 살아있는 체험의 장소에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것이 아닐까.
우리 조카들은 내가 우리나라 전래동화인 ‘여우누이와 세 오라버니’이야기를 오싹오싹 소름 돋게 이야기해주면, 무서워서 오들오들 떨면서 내 옷깃을 꼭 붙잡고 늘어지며 비명을 지르면서 좋아한다. 그렇게 무섭다면서도, 그 다음에 만나면 ‘한 번 더 그 이야기를 더 들려달라’고 졸라댄다. 아이들은 옛날이야기를 어른들의 즉흥 구연으로 들려주는 일에 열광한다. 나는 스릴과 서스펜스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되도록 있는 힘껏 이야기의 디테일을 지어내고 묘사하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데, 그러는 동안 나의 표현력과 상상력도 더 자라는 느낌이다. 우리는 유투브 컨텐츠에 중독되어 가는 아이들에게, 어른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 낭독이나 구연을 통해 책의 소중함을 알아갈 기회, 나아가 삶을 더욱 깊이 있고 따스한 언어로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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