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와 공조해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린 민주노총 등 진보단체들이 ‘촛불항쟁’ 2년을 맞아 거꾸로 “문재인 정부도 사실상 적폐”라며 대대적 투쟁을 예고했다. 이들 단체는 현 정부가 최저임금·비정규직·재벌개혁 같은 현안에서 노동계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는다며 ‘대화 대신 투쟁’으로 방향타를 급선회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선,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같은 노사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노사정 사회적 대화도 큰 차질이 우려된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한국진보연대·전국농민회총연맹 등 50여개의 진보단체로 구성된 민중공동행동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2018 민중요구안 발표 및 전국민중대회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 2년간 촛불 민의 실현을 위한 주요 과제들이 정부에 의해 회피·무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현 정부와 국회는 촛불 민의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심지어 역행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적폐청산과 사회 대개혁을 위한 법안 통과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적폐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행태를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민주노총을 앞세운 진보단체들이 대정부 투쟁에 대한 공세의 고삐를 죄고 있는 것은 최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를 비롯해 탄력근로제 확대와 광주형일자리 등 주로 노동 관련 이슈에서 주도권을 잡고 노동계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2년 전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해 현 정부와 공동전선을 만들었던 ‘촛불동지’ 노동계가 이제는 ‘촛불청구서’를 앞세워 강력한 적대세력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민중공동행동은 촛불항쟁 2주년을 맞아 다음달 1일 전국민중대회를 열고 총력투쟁을 벌일 계획이다. 민중공동행동을 주도하는 민주노총은 오는 21일 총파업 투쟁에 이어 전국민중대회까지 벌여나가며 노동계의 입장을 관철하기로 했다. 민주노총은 6일 기자회견에서 “일자리·비정규직·최저임금·부동산투기 등 민생 문제는 보여주기 식 발표와 준비되지 않은 대책으로 혼란이 커졌다”며 “이를 빌미로 적폐세력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민중공동행동의 요구가 민주노총 등 진보세력의 입장만 과잉 대변한다는 반론이 많다. 사회 일각에 불과한 민중공동행동이 진보·보수를 아우르는 광범한 시민이 참여한 ‘촛불집회’의 영향력을 사실상 ‘독점’하려 든다는 것이다. 당장 이날 민중공동행동이 내놓은 주요 요구사항을 보면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담은 개정 최저임금법 폐지 △국가보안법 폐지 △비정규직 철폐 △노조할 권리(노동기본권) 보장 등 찬반 논란이 분분한 것들이 대다수다.
이들의 요구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노총은 “현 정부 들어 범죄자 이재용(삼성전자 부회장)이 석방되고 민생 문제는 보여주기 식 발표와 준비되지 않은 대책으로 혼란을 야기하고 있으며 사법 적폐 청산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방치되는 등 스스로 적폐세력과 다를 바 없는 행태를 보이며 큰 실망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석방, 사법 적폐 청산 과정에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주장이 왜곡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노총이 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투쟁에 몰두하면서 간신히 복원되나 싶었던 노사정 사회적 대화도 파행을 맞고 있다.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민주노총을 배제하고 이달 22일 출범할 예정이다. 노사정은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선 문제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에 합의를 이뤄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노사 당사자들은 민주노총이 길거리 투쟁을 본격화하면 결국 이 같은 중대 현안들이 교착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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