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8년 만에 하원을 다시 장악해 공화당 일색이던 미 의회 구도가 ‘상공하민(상원은 공화당, 하원은 민주당이 다수당 장악)’의 ‘트위스트 의회’로 바뀜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 2년 동안 추진해온 주요 정책 추진에서 속도 조절 및 방향 선회가 불가피해졌다. 연방정부 예산 심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하원을 민주당이 장악함에 따라 당장 추가 감세정책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으며 이민정책 등을 둘러싼 미 정치권의 불협화음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통상정책에 있어서는 큰 변화 없이 방향성을 유지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지만 양국 무역분쟁으로 미국 제조업 곳곳에서 경고음이 나오고 있어 민주당을 중심으로 지나친 대중 제재를 자제할 것을 요구하는 의회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글로벌 투자은행과 경제조사기관들의 전망을 인용해 “의회가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던 구도에서 민주당에 힘을 더하는 방향으로 재편됐지만 미국 경제의 경로가 급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주당이 하원을 탈환했지만 여전히 상원에서 공화당 지위가 확고해 정부 정책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우선 미국 경제정책의 핵심인 미중 무역정책에서는 민주당 역시 지적재산권 도용이나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해 공화당과 뜻을 같이하고 있어 당분간 방향성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민주당 정부에서도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해 지적해온 만큼 대중 강경 기조가 약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크리스토퍼 존슨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을 인용해 “중간선거가 미국과 중국 관계의 전반적 궤도를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회의 견제장치가 작동하게 된 만큼 트럼프 특유의 폭주에는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중국 신화망은 “트럼프 행정부가 ‘분열된 국회’에 직면하게 되면서 집정능력이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중국에 대한 제재가 느슨해질 가능성을 제기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무역전쟁이 다시 격화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전 대중 유화 메시지가 선거를 의식한 ‘주가대책’이었는지, 본격적인 타협 모색이었는지 불투명하다며 미중정상회담의 향방을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을 대체할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에 대한 비준 과정도 다소 복잡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해 최종 비준은 확실시되지만 민주당이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조항을 추가로 요구할 가능성이 커 의회 승인까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비준 투표가 해를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USMCA 비준이 미뤄지면 기업들의 투자 결정도 연기되는 등 경제에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 막판 승부수로 띄운 개인소득세 감면 등이 담긴 새 감세안 추진도 어렵게 됐다. 지난 9월 하원을 통과한 개인소득세 영구 감면 등의 내용이 담긴 1조5,000억달러 규모의 추가 감세에 대해 공화당 의원 상당수도 반대하고 있어 새 감세안이 상원을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 의원뿐 아니라 공화당 의원들도 감세안으로 재정 악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 트럼프 행정부가 진행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같은 경제적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증시는 평균 수준 이상의 강세장을 유지할 것으로 분석된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의 조지프 송 이코노미스트는 “공화당 소속 대통령과 양당으로 쪼개진 의회가 시장에는 최선의 결과를 낳았다”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 기업은 연간 12%까지 상승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외교 분야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러시아의 유착관계에 대한 수사 진행과 함께 대러 제재 압박이 더욱 고조될 것으로 관측된다. 또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피살사건과 관련해 사우디에 대한 입장도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의회 전문매체 더힐은 “민주당이 하원 다수를 차지하면서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을 지지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기존 정책을 번복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중간선거의 최대 쟁점이었던 이민자 문제도 큰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우선 멕시코 국경지대 장벽건설 비용 등 반이민정책 예산 편성에 민주당이 제동을 걸 것으로 보이고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유예 프로그램(DACA)과 관련한 이민개혁 타협안 추진에 탄력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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