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대학 연구원들이 인터넷쇼핑몰에서 해외 화학물질을 ‘직구(직접구매)’했다가 사법당국에 적발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화학물질 직구’는 전세계 연구원들 사이에서 일상적인 일이지만 국내에서는 명백한 불법이다. 현행 화학물질 관리 감독체계가 거래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대학가와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3월 이화여대·연세대·동국대·고려대 구로병원 등 7개 주요 대학 연구진 30여 명은 실험용 화학물질을 해외 택배로 배송받아 장기간 사용하다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위반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현행법상 시약 판매상을 거치지 않고 화학물질을 직접 수입할 경우 당국에 직접 신고해야 하는데 이를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다만 들여온 화학물질이 범죄에 사용되지 않았고 고의성도 없다고 보고 5건을 기소유예 처분했다.
현행법상 시약 판매상을 통하지 않고 화학물질을 수입하려면 당국에 미리 해당 물질을 등록하거나 등록면제를 신청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징역 3년형이나 벌금 5,000만원 이하의 처벌을 받는다. 환경부는 법 제정 3년째를 맞이해 지난해 현장 점검을 나갔다가 위반사례가 나오자 ‘엄정대응하겠다’며 줄줄이 검찰에 고발했다.
문제는 인터넷 상거래 속도가 빨라지면서 소규모 연구소와 개인 사업자 등을 중심으로 비슷한 사례가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이다. 연구원들은 기존 시약판매상보다 값이 싸 직구를 점점 선호하는 추세다. 주로 연구팀이 인터넷쇼핑몰에서 원하는 화학물질을 골라뒀다가 공용 카드로 한꺼번에 결제하는 방식이다. 서울 시내 대학의 화학과 대학원을 다니는 김모(29)씨는 “일부 시약판매상이 원가의 2~5배에 달하는 돈을 요구하다 보니 지인 몇몇이 해외 택배를 신청하곤 했다”며 “1년 가까이 실험용도로 썼지만 불법인 줄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대학과 과학기술계에서는 정부에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범죄 악용이나 사회적 해악이 없다면 제도를 개선해 연구 목적의 화학물질에 한해 직구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화학물질 관리 문제로 직구를 인정할 수 없다면 불법 여부를 명확하게 적시하고 홍보를 강화해 연구원들이 선의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 달라는 주장이다. 전국 대학 산학협력단장·입학처장협의회 관계자는 “대학가에서는 흔한 관행이고 아무도 안내해 주지 않아 법 위반 사유인지 몰랐다”며 “각 대학에 홍보와 교육을 강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인터넷 상거래 속도가 빨라지면서 화학물질 반입을 사후감독하는 것만으로는 어려운 점이 있다”며 “교육부와 협의해 대학가나 연구소 등의 홍보 강화 방법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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