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종로구 고시원 화재 원인은 전열기에 따른 실화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사고는 출입구 쪽에서 불이 난데다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화재 자동경보음조차 울리지 않아 피해가 컸다는 지적이다. 희생자 대부분은 50~70대 생계형 일용직 근로자들로 알려져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서울 종로소방서와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9일 오전 5시께 서울 종로구 관수동 청계천 인근의 한 고시원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사망자는 국내에 거주하던 일본인 1명을 포함해 35세에서 78세 남성들이다. 이날 화재가 발생하자 소방당국은 소방관 173명과 소방차 52대를 투입해 2시간 만에 진압했다.
해당 건물은 지상 3층 규모로 1층은 음식점, 2~3층은 고시원으로 이뤄졌다. 경찰은 목격자의 진술과 폐쇄회로TV(CCTV)를 토대로 화재가 3층 출입구 근처에 위치한 301호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301호 거주자가 이날 새벽에 일어나 전열기 전원을 켜고 화장실을 다녀온 후 전열기에서 불이 나는 것을 목격했다”면서 “이불로 불을 끄려 했으나 불이 확산돼 본인도 대피한 것으로 진술했다”고 말했다.
화재가 발생하자 24개실이 있는 2층 거주자들은 계단을 통해 자력으로 대피했으나 26개실이 있는 3층 거주자들은 제때 건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고시원이라는 특성상 6.6㎡(2평)짜리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3층 출입구 쪽에 불이나 사실상 탈출로가 봉쇄돼 피해가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복도도 성인 두 명이 동시에 지나가기 어려울 만큼 밀집된 구조다. 특히 고시원에 스프링클러가 없었고 화재 자동경보음도 울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83년에 지어진 건물은 건축대장에 고시원이 아닌 ‘기타 사무소’로 등록돼 국가안전대진단 점검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아울러 관련 법상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도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새벽 시간에 출입구 쪽에서 불이 나면서 화재 현장은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거주자들은 맨몸에 외투만 걸쳐 나오거나 맨발에 슬리퍼만 신는 등 급하게 대피했다. 부상자를 치료 중인 국립중앙의료원 관계자는 “생존자들에 따르면 창틀이 유독 좁아 어깨가 빠져나오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며 “(부상자가) 매달린 창틀조차 뜨거웠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화재가 발생한 건물의 3층 창문 곳곳이 깨져 있었다. 고시원에 거주한 조모씨는 “2층 사람들은 대부분이 계단으로 나왔고 3층에서 구조된 분 중에는 (건물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친 사람도 있다”면서 “창문에 매달려 있다가 구조된 경우도 있다”고 급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고시원 2층에 거주한 정모씨는 “경보기가 하필 고장 났다고 들었다”며 “‘불이야’ 소리를 듣고 방에서 가까스로 뛰쳐나왔다”고 말했다. 7년째 고시원 4층 옥탑방에서 살아온 장모씨는 “평소에는 비상문을 열고 내려가고는 했는데 이날따라 유독 문이 잘 열리지 않아 연기를 많이 마셨다”며 “문을 열려다 손에 2도 화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10일 오전 합동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힐 예정이다. /김지영·오지현·서종갑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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