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택재건축정비사업을 추진 중인 대전의 A 조합장은 조합원들의 의견을 모아 최근 시공사에 공문을 보냈다. 내용은 화장실 선반, 신발장 등 화강암에서 라돈이 검출된 사례가 있는 만큼 해당 아파트에선 어떤 자재가 쓰이고 있는지 상세히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인조대리석이 사용될 예정이라는 시공사의 답변을 받았지만 조합원들은 입주에 즈음해 직접 실내 공기 질을 측정해보기 전까지 안심하기 어려울 것 같다.
라돈 공포가 아파트 입주자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침대·온수 매트 외에 아파트 자재 등에서도 라돈이 검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입주자 커뮤니티에서는 라돈 측정 사례 및 대응 내용을 공유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건설사에 자재 교체와 검출 여부 확인 등을 요청하는 민원이 급증하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다수의 아파트 입주자 카페에서는 라돈 측정 기구인 ‘라돈아이’ 대여처와 측정 후 수치를 공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수치가 높게 나온 단지 주민들 사이에선 시공사에 문제가 된 자재에 대한 교체를 요청 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입주자 C 씨는 “시공사에 이미 민원을 넣은 단지도 있다”면서 “그런데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당장 발암 물질이 내 집안에 들어와 있다고 하니 꺼림칙해 인테리어 업체에 연락해 직접 인조대리석으로 바꾸는 이들도 많다”고 밝혔다.
라돈 아파트 공포는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환경부가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연구용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이뤄진 서울과 인천, 김포, 춘천, 세종 등 9개 지역 아파트 178가구 대상 조사에서 약 15% 인 27가구에서 라돈 농도가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준인 100베크렐(Bq/㎥)을 초과했다.
라돈은 자연 상태의 화강암이나 건축자재에서 방출된다. 주로 화장실 선반, 신발장 등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특히 고급화를 이유로 화강암 또는 대리석이 많이 쓰인 신축 아파트일수록 라돈 농도는 더 높았다.
문제 소지가 있는 자재를 교체해 달라는 민원이 쏟아지면서 건설사들도 해결 방안을 찾고 있다. 하지만 건설사들도 곤혹스러워 하기는 마찬가지다. 환경부 공인측정 기준에 맞춰 라돈에 대한 전수조사를 위해서는 세대별 48시간 이상 측정이 필요하다. 또 자재를 전면 교체 하기엔 시간 및 비용 부담이 어마어마 한 것도 현실이다. A건설사 관계자는 “일단은 입주민들과 모여서 다각적으로 해결 방안을 찾고는 있지만 뚜렷한 해결방안이 없는 상태”라고 털어놨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라돈은 자연 상태에서 80~90%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대리석 또는 화강암이 사용된 웬만한 신축 아파트에는 라돈이 검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라돈 관리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 없이 온전히 건설업계에만 떠맡기려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올해 1월 1일 이후 사업승인을 받은 신규 주택에 대해서는 라돈 측정이 의무화 돼 있지만 이전 아파트는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분쟁이 빈발하고 있다. 건설사들은 준공 당시에는 라돈 관련 규정이 없었고 나머지 실내공기질 기준을 잘 지켰다는 입장이지만 주민들은 이제라도 문제가 발견됐으니 자재를 교환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 올해부터 라돈 측정이 의무화됐다고는 하지만 기준치를 초과해도 환경부가 시공사에 자재를 교체를 요구할 수 있는 등의 법적 권한은 없다. 현재는 공동주택 기준치인 200베크렐이 넘으면 개선 조치를 권고하는 수준이라 관리가 제대로 될 리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환경부는 공동주택의 라돈 권고기준도 다중이용시설 수준인 148베크렐로 강화하는 실내공기질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지난 6월 입법 예고하면서 라돈 관리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건설사들은 라돈 농도를 건설사가 알아서 낮추라며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환경부의 한 관계자는 “라돈의 경우 환기를 꾸준히 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건설사 및 주민 간 분쟁에 대해서는 환경부 실내공기질관리법 기준에 따라 풀어나갈 것을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원기자 joowonmai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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