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숙명여고 정기고사 시험문제·정답 유출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실제 문제가 유출됐다는 결론을 내리고 수사를 종결했다. 경찰은 구속된 숙명여고 전임 교무부장 A(53)씨와 함께 그의 쌍둥이 딸들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12일 오전 숙명여고 문제유출 사건 수사결과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숙명여고 전임 교무부장 A씨는 2017년 6월부터 2018년 7월 사이에 치러진 정기고사 총 5회의 문제와 정답을 유출, 학교의 성적관리 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를 받는다. 경찰은 A씨가 2학년 1학기 중간·기말고사뿐 아니라, 지난해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부터 1학년 2학기 중간·기말고사까지 문제를 유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숙명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인 두 쌍둥이 딸은 부친으로부터 문제를 넘겨받아 부당한 방법으로 시험을 치러 학교 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를 받고 있다.
경찰 수사결과 쌍둥이가 만든 ‘암기장’에서 2학년 1학기 기말고사의 전 과목 정답을 메모해둔 사실이 확인됐다. 경찰은 쌍둥이가 답안 목록을 잘 외우기 위해 키워드를 만들어둔 흔적도 있었다고 밝혔다. 쌍둥이가 실제로 푼 학교 시험지에서는 미리 외워온 정답 목록을 아주 작게 적어둔 흔적도 나타났다. 물리 과목의 경우 계산이 필요한 문제 옆에서 정답 목록만 발견됐고, 계산하면서 문제를 푼 흔적은 확인할 수 없었다.
쌍둥이 중 동생의 휴대전화에서는 2학년 1학기 기말고사의 영어 서술형 문제 정답이 그대로 적혀 있는 것이 발견됐다. 경찰이 디지털포렌식을 통해 복원한 결과 이 메모는 시험보다 전에 작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자택에서는 미적분 과목의 새 시험지도 발견됐으며 경찰은 이 시험지 역시 미리 유출된 것으로 의심된다고 밝혔다.
또 올해 1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시험지가 교무실 금고에 보관된 날 A씨가 각각 근무 대장에 시간 외 근무를 기록하지 않고 야근한 사실도 확인됐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메모 등 문제유출 정황을 보여주는 자료는 잘 모른다”면서 “시험지 보관일에 야근했지만 기록하지 않았던 것은 평소 초과근무 때보다 일찍 퇴근해서 따로 기재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8월 31일 서울시교육청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자 자택 컴퓨터를 교체한 것에 대해서는 “노후 컴퓨터를 교체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모든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쌍둥이 자매 역시 문제유출 정황에 관해 “시험 뒤에 채점하려고 메모한 것”이라면서 성적이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경찰은 A씨는 이달 6일 구속 전에 네 차례, 구속 후에 한 차례 불러들여 조사했다. 쌍둥이 자매는 총 세 차례 조사했지만 이들이 미성년자인 점 등을 고려해 구속영장은 신청하지 않았다.
한편 경찰은 A씨 부녀와 함께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한 전임 교장과 교감, 정기고사 담당교사 등 3명은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들은 A씨를 정기고사 결재라인에서 배제하지 않은 사실은 있지만, 문제유출을 알면서 방조했는지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경찰은 사건 수사에서 드러난 학교 성적관리의 문제점과 제도 개선 필요사항을 교육청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학교 시험문제 출제부터 보관·채점 등 전 과정에 대한 보안지침을 명확히 마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면서 “시험지 보관 장소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금고 개폐 이력을 저장하는 등의 보안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다원인턴기자 dwlee618@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