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학교 수능 응원은 아마 저희가 처음일걸요?”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날인 23일 제15시험지구 제23시험장인 서울 종로구 신교동 서울맹학교에는 이색적인 모습이 펼쳐졌다. 예년과 달리 시각장애 수험생 응원단이 나타난 것. 물론 여느 고등학교처럼 떠들썩한 후배 응원단은 아니었다. 다만 ‘점자 응원쪽지’를 건네며 전달된 진심은 그 어떤 응원보다 뜨거웠다.
이날 서울맹학교에서 수능을 치르는 학생은 총 9명이다. 서울 지역의 시각장애 학생들은 서울맹학교에서, 저시력 장애 학생은 여의도 중학교에서 수능을 치른다.
오전 6시40분께 학교 정문 앞에 두 명의 낯선 청년이 나타났다. 수험생인 줄 알았던 이들은 알고 보니 지난해 수능 시험을 치른 시각 장애 수험생 선배였다. 이들의 등장에 경비실에 있던 안내 주무관도 “맹학교에 응원은 처음인데”라며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맹학교 후배들에게 뜨거운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나왔다고 전했다. 서강대 정외과 18학번인 이승훈(24)씨는 “지난해 시험을 치렀는데 다른 고교와 달리 조용히 치러 아쉬웠다”며 “이번에는 후배들에게 색다른 응원을 전하고 싶어 모교를 찾았다”고 말했다. 단국대 정외과 18학번인 강성길(25)씨도 “부산맹학교 출신이지만 같은 시각장애인으로서 힘든 마음을 알아 이씨 제안을 받아들여 기꺼이 응원에 나섰다”고 했다. 이들은 시각장애 수험생들을 응원하기 위해 일일이 다과를 포장하고 “수능대박 힘내세요”라는 문구의 ‘점자 응원쪽지’를 준비해왔다.
오전 7시28분께 학교 정문으로 첫 입실자가 등장했다. 배낭을 맨 채 어머니 팔짱을 꼭 끼고 도착한 한빛맹학교 3학년 양지우(19) 학생은 “무대 체질이라 긴장하지 않는다”며 “피아니스트가 꿈인 만큼 이번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원하는 대학 피아노과를 꼭 가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양씨는 이날 개인용 헤드폰을 직접 챙겨왔다. 양씨는 “지문을 읽으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화면 낭독 프로그램을 쓰는데 평소 쓰는 헤드폰이 편해 챙겨왔다”고 설명했다.
선생님들은 기특한 표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봤다. 임인진 서울맹학교 종로캠퍼스 교감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이곳에서 보낸 학생의 경우 길게는 15년까지 지켜보게 된다”며 “여기서 학생들이 추억을 남기고 꿈을 기르는 과정을 모두 봤는데 이제 곧 졸업이라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오전 8시께 마지막 수험생이 입실을 마치고 학부모들은 삼삼오오 모여 소회를 나눴다. 김경숙(49) 서울맹학교 학부모회장은 “우리 아이들은 일반 학생들보다 최소 1.5배 더 긴 시간 시험을 치른다”며 “마지막까지 체력적으로 지치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날 서울맹학교에서 수능을 치르는 학생들에게는 점자 문제지와 음성지원 컴퓨터가 제공된다. 이들에게는 과목당 일반 수험생의 1.7배 긴 시험시간이 주어져 수험생들은 오후 9시43분에 모든 시험을 종료하게 된다.
/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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