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훈련기와 유럽제 대형수송기 A400M의 맞교환이 물결을 탔다. 그러나 급물살이 될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시일이 많이 남았다. 거래가 성사되더라도 인도 시기는 일러야 오는 2025년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번 거래 시도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국산무기로 유럽과 맞교환할 수 있다는 것 자체부터 희소식이다. 한국의 방산 기술이 유럽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면 국제적으로 고품질을 인정받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협상 본격 시작=주초인 지난 12~13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한국·스페인 방산군수공동위원회에서 스페인은 당초 의제에 없던 제안을 꺼냈다. 수송기 A400M을 한국의 T-50고등훈련기와 KT-1기초훈련기를 맞바꾸는 ‘스와프딜’을 제안한 것. 스페인은 이에 앞서 7월 영국에서 열린 판보로 에어쇼에서 우리의 의향을 타진했다. 당시에도 양국의 정부 관계자가 끼었지만 업계끼리 얘기가 오간 수준이었던 제안은 이번 군수공동위를 통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스페인의 제안은 일단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3년 전부터 공급되기 시작한 신형 기체인데다 대형이다. 지난달 27~29일 사이판과 괌을 10차례 오가며 사이판에 고립된 국민 799명을 안전하게 이송한 우리 공군의 C-13OH수송기는 최대 114명을 태울 수 있다. 적재 시 수송능력은 80명 선으로 내려간다. 기체도 최초 모델이 나온 지 64년이 지난 구형이다. 오래됐다는 점은 그만큼 안전성이 검증됐다는 얘기가 될 수 있으나 A400M은 우리 공군이 보유한 수송기보다 분명히 한 수 위다. 공군 C-130H의 항속거리와 최대 이륙중량은 각각 5,250㎞, 7만4,393㎏인 데 비해 A-400M은 8,700㎞, 14만1,000㎏이다.
스페인의 제안이 솔깃한 이유는 또 있다. 마침 우리 공군도 대형수송기 도입을 제기한 상태다. 미국의 차기훈련기 수주전에 록히드마틴사와 컨소시엄을 이뤄 뛰어들었으나 보잉-사브 연합에 밀린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입장에서도 모처럼의 호재를 만났다. 국내 방산 업계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서유럽 국가를 상대로 상륙함과 자주포에 이어 초음속항공기까지, 육해공 무기체계를 두루 팔 수 있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고가 무기의 수입선 다변화라는 부수효과도 발생한다. 맞교환의 정식 명칭은 ‘대응구매(count purchase·민간 교역에서는 바터트레이드)’로 침체에 빠진 국내 방산수출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방산군수공동위서 스페인 ‘스와프’ 제안
韓, C-130H 구형 업그레이드 필요하고
스페인은 훈련기 세대교체 시급 ‘윈윈’
◇ 한·스페인, ‘윈윈 거래’ 가능=거래가 성사되면 스페인이 얻는 효과도 크다. 만약 누군가 대신 A400M 기체 13대를 구매하지 않을 경우 에어버스사에 대당 2억 유로씩 위약금을 물어야 할 판이다. 그렇다고 계약 자체를 포기하기도 어려운 게 유럽 7개국의 공동생산품인 이 기체의 최종 조립공장이 스페인 세비아에 있다. 서쪽으로 항해하면 인도에 닿을 수 있다고 믿은 콜럼버스의 선단이 출항한 항구 도시인 세비아 일대에는 항공산업이 밀집해 고임금 일자리만도 6,000여개에 이른다.
어떻게든 생산해 고용과 시설을 유지하면서 세대교체가 시급한 훈련기를 확보하려는 게 스페인 입장에서 이 사업의 골자다. 스페인은 칠레가 미국의 기술로 1980년대에 제작한 T-35 필란 프로펠러 훈련기 35대를 기초훈련기로, 자국산 CASA-101(1977년 처음 비행) 아음속 제트훈련기 64대를 운용 중이나 두 기종은 기체연령이 30~40년에 이르는 노후화로 사고 방지를 위한 신형훈련기가 절실한 형편이다. 고등훈련기도 E/F-18슈퍼호넷, 유로파이터를 사용하는 스페인은 중등 이하 항공기를 확보하지 못하면 비싼 항공기로 조종을 처음 배우는 교육생들에게 맡겨야 할 처지다.
당장 계약해도 빨라야 2025년 도입 가능
가격·성능·인도시기 등 주도면밀 따져야
◇시간과 가격·성능 정교하게 따져야=스페인과의 무기대응 구매 방안이 알려지자 환영 분위기다. 공군의 염원이던 장거리 수송 능력이 확보돼 해외 파병이나 재외국민 구출이 보다 수월해졌다는 것이다. 구매를 기정사실로 여기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하지만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당장 계약이 성사돼도 인수는 2025~2030년에나 가능하다. 스페인의 보유 기체가 대상이 아니라 앞으로 인도받을 기체가 매물이기 때문이다. 제작사인 에어버스사와 27대를 계약한 스페인이 지금까지 인수한 기체는 3대뿐이다.
시간 여유가 있는 동안 두 가지 살펴봐야 할 대목이 있다. 첫째는 성능 검증. 스페인이 왜 27기 전량을 인도하기로 하고 13대를 다른 국가에 넘기려 하는지, 기대했던 성능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인지 규명이 필요하다. 스페인뿐 아니라 독일과 영국도 도입 규모를 축소하고 이탈리아는 아예 인수를 없던 일로 돌렸다. 3년 전 발생한 추락사고의 원인이 소프트웨어 오류이며 탑재 중량이 설계 시 설정했던 37톤을 한참 밑돈다는 의구심도 깨끗하게 사라지지 않은 상태다. 스페인에 인도되는 기체가 소문대로 A400M의 특장점인 초저고도 침투비행과 굴곡진 지형을 타며 회피 기동하는 장치가 안 달렸는지도 확인해야 할 대목이다.
둘째는 가격. 유일하게 계획 대수를 전량 도입하려는 프랑스는 50대에 89억유로, 기체 한 대당 1억5,420만유로(약 1,950억원)를 지출할 계획이다. 스페인은 27대 구매에 34억5,300만유로를 투입할 계획이었으나 54억9,300만유로(대당 2억344만유로·2,603억원)로 불어났다. 왜 예산이 59%나 늘어났는지, 운용 유지 및 수리 부속 조달 등 후속 군수지원에 들어갈 돈은 얼마인지 점검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15% 에누리’도 가격 기준을 얼마로 잡느냐에 따라 액수가 달라진다. 스페인이 추가로 지출한 예산을 기준으로 대당 가격을 산정하면 15% 할인을 받아도 1억7,292만유로에 이른다. 프랑스 도입가에 비하면 12% 이상 비싸다. 물론 우리가 넘길 훈련기들의 사양을 낮게 조정하면 맞바꾸는 가격의 평형을 맞출 수 있겠지만 훈련기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기에 추가로 인하할 여지도 크지 않다.
◇다른 대안 세 가지=공군이 원하는 대형수송기 확보 방안은 스페인과의 빅딜만이 아니다. 크게 세 가지 방안이 거론된다. 먼저 한국 공군이 공중급유기로 도입 중인 A330 MRTT의 수송기 겸용형. 즉시 도입이 가능한데다 수송 능력이 크며 검증된 성능에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으나 가격이 비싸고 야전의 험지에서 이착륙이 불가능한 것이 단점이다. 다음은 공군이 염원하던 C-17 도입 가능성. 미국 보잉사가 롱비치 공장의 생산라인을 폐쇄하고 공장부지를 매물로 내놓았으나 미 공군 일각에서 제기되는 추가 생산과 라인 재개가 현실화할 경우 도입이 가능하다. 미 공군은 사막에 보관한 초기 생산분을 재생하는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보잉사는 미 공군의 수요가 많고 한국·터키 등의 수요가 있을 경우 생산을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최고 성능이 입증된 기체지만 생산이 재개돼도 고가라는 점이 걸림돌이다. 제3의 방안은 서방제 도입 대신 러시아로 눈을 돌리는 것. Il-76MD-90A, An-70와 개발 중인 An-188 등이 후보 기종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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