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유출 사건은 이른바 ‘암수(暗數)범죄’다. 단기간에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데다 범행을 입증하기가 어려워서다. 이러한 이유로 기술유출을 당하고도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중소기업이 전체의 45%에 이른다. 또 범행을 입증하기 어렵다 보니 소송에 나서기도 꺼리고 승소하더라도 상대방에게는 가벼운 처벌만 내려진다. 기업들이 기술유출에 따른 손해를 제대로 보상받고 관련자를 엄히 벌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법률적 기술보호 요건’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법률적 기술보호 요건은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보호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 법적으로 기술이나 영업비밀을 보호받으려면 △비(非)공지성 △경제적 유용성 △비밀 관리성 등 세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비공지성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고 회사의 허락 없이 취득할 수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경제적 유용성은 말 그대로 해당 기술이나 경쟁에서 이익을 가져오는지를 따진다. 비밀 관리성은 회사 스스로 비밀을 유지하려는 합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이를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실제 사건에서는 경제적 유용성보다 비공지성과 비밀 관리성이 주로 다뤄진다. 특히 비밀 관리성이 중요한 쟁점과 판단 기준인 사례가 많다. 지난해 3월 서울중앙지법은 화장품 도소매 업체 A사의 경영기획팀장 B가 제기한 해고 무효 소송에서 B의 손을 들어줬다. 앞서 A사는 회사 사업계획서와 원가분석 자료 등 내부 자료(1만7,300개 파일)를 외부로 유출한 사실을 확인하고 B를 해고했다. A사는 비밀유지서약서 작성과 징계 절차 등을 제대로 이행했지만 ‘취업규칙’에 허점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취업규칙에 담긴 해당 해고 사유는 ‘업무상 비밀 및 기밀을 누설해 회사에 피해를 입힌 자’였다. 법원은 “피해가 발생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해고 무효 판결을 한 것이다.
이근우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비밀 관리성은 기술이나 영업비밀을 회사가 어떻게 취급하느냐는 관리적 측면이 강조된다”면서 “수사기관이나 법원은 비밀 관리성이 없으면 기밀이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기술유출을 입증하더라도 이를 해당 기업이 기밀로 다뤘는지를 꼼꼼히 들여다본다”고 설명했다. /김성수·안현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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