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곤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회장과 그레그 켈리 닛산자동차 대표이사(Representative Director)가 동시에 체포되면서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의 자동차 생산과 판매에 비상등이 켜졌다. 회사 신뢰도 추락을 우려한 투자자들은 장외에서 3사 주식을 투매했다.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사장은 19일 오후10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일에 유감을 넘어 강한 분노와 실망을 느낀다”면서 “주주와 관계자들에게 사과한다”고 밝혔다.
사이카와 사장은 곤 회장과 켈리 대표이사의 해임을 이사회에 제안한다고도 밝혔다. 앞서 닛산은 “수개월에 걸쳐 내부 조사를 실시한 결과 곤 회장이 보수를 축소 보고하고 회사 자금을 사적으로 지출하는 등 여러 심각한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전했다.
르노 출신인 곤 회장은 르노가 1999년 경영위기에 빠진 닛산에 출자했을 당시 최고운영책임자(COO)로 구원 등판했다. 이듬해 닛산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아 회사를 진두지휘했다. 1990년대 후반 르노의 구조개혁을 이끌며 ‘비용절감의 달인(Le Cost Killer)’으로 명성을 떨쳤던 그는 닛산의 변신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에는 르노 CEO까지 겸임하게 됐다. 닛산에 파견된 지 6년 만에 ‘포천 글로벌 상위 500개 기업’ 가운데 2개사를 이끌게 됐다. 특히 곤 회장은 부채가 2조1,000억엔에 달했던 닛산을 1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으며 지금도 일본 산업계에서 구조조정의 전설로 회자된다. 그는 “1년 안에 회사를 흑자로 전환하지 못하면 그만둔다”며 배수진을 치고 생산·판매·재무 등 각 부문별로 100명의 프로젝트 팀을 결성해 구조조정에 매달렸다. 생산성이 낮은 공장과 영업점을 대거 정리한 결과 그는 6,844억엔의 적자를 내던 닛산을 1년 만에 3,311억엔의 흑자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그가 닛산 CEO에서 물러나기 전에는 ‘파워 88’ 계획(6주마다 신모델 발표, 매년 비용 5% 절감, 세계 시장 점유율을 8% 달성)을 추진하며 비용 절감에 박차를 가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대형 철강기업에 구조조정이 불어닥쳤을 때 ‘곤 쇼크’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그의 비용 절감은 산업계에서 교과서가 됐다”면서 “올해 4월 도시바 회장에 오른 구루마타니 노부아키가 올 11월 발표한 사업 계획도 곤 회장의 구조조정을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곤 회장의 체질 개선이 효과를 내면서 르노·닛산의 실적도 빠르게 개선됐다. 2000년 498만대에 그쳤던 르노·닛산차의 판매량은 2014년 800만대로 뛰었다. 회사가 2016년 미쓰비시자동차 지분을 인수한 뒤에는 시너지 효과가 더욱 커졌다. 지난해 3개 브랜드 판매량은 1,061만대를 기록해 도요타·폭스바겐을 제치고 처음으로 세계 2위로 도약했다.
곤 회장이 지난해 17년 만에 닛산 CEO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그룹을 계속 이끌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지난 9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얼라이언스의 회장 겸 CEO일 것”이라면서 “나는 얼라이언스를 구축하는 데 역사적인 역할을 했고 3개 회사 모두에서 정통성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검찰 체포로 곤 회장의 구상이 물거품이 됐다. 특히 경영진의 비리로 그룹 3개사의 신뢰도가 추락하며 주식시장에서도 투자자들의 투매가 잇따랐다. 이날 르노 주식은 유럽 증시에서 장중 15% 폭락했고 닛산차와 미쓰비시의 주가도 일본 장외거래에서 종가 대비 7~8% 급락했다. 미쓰비시의 해외예탁증서 가격도 11% 떨어졌다.
데이터 조작으로 홍역을 치렀던 닛산에 경영진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3년 4월부터 지난달까지 총 19개 차종 1,171대에 대한 배기가스·연비 데이터 조작이 이뤄진 것이 밝혀져 파문이 일었으며 지난해 9월에는 무자격 종업원이 공장에서 출고차 최종검사를 한 사실이 드러나 차량 100만대 이상을 리콜 처분한 바 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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