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수치료를 받으면 보험금으로 쌍꺼풀 수술을 해준다”며 불법을 일삼은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 원장과 이에 가담한 환자들이 무더기로 붙잡혔다. 경찰은 이들이 미용수술을 도수치료로 둔갑시켜 수억원대의 보험금을 허위청구하고 간호조무사에게 대리수술까지 맡긴 것으로 보고 있다.
20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보험사기방지법·의료법 등 위반 혐의로 강남 역삼역 G성형외과 원장 김모(49)씨를 구속하고 환자 151명과 병원 관계자 등 164명을 지난달 말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김씨 일당은 지난 2016년 11월부터 올 5월까지 “오십견 때문에 어깨·허리가 아프다”며 병원을 방문한 중년 환자를 주요 타깃으로 삼아 마사지를 비롯한 ‘유사’ 도수치료를 실시했다. 환자에게는 “도수치료를 보험처리하면 쌍꺼풀은 공짜로 해주겠다”며 미용 목적 수술을 권하고 이를 도수치료로 꾸며 진료비를 청구했다. 이들은 도수치료가 포함된 보험사 가입자들만 골라 받고 실손보험금을 허위로 청구해 수익을 올렸다. 지난해 5월 압수수색이 이뤄진 뒤에도 버젓이 문을 열고 성업하던 G병원은 지난달 병원장 김씨가 구속된 뒤에야 문을 닫았다.
김씨와 부원장은 이전 병원에서 함께 근무하며 도수치료를 패키지로 판매하는 경우 인기가 좋다는 점에 착안해 범행을 계획했다. 단순 추산으로 도수치료 1회당 20만~30만원씩 10~20회를 허위청구하면 환자 1인당 200만~600만원을 손쉽게 편취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간호조무사의 대리수술, 비자격자의 방사선 촬영 같은 위험천만한 일도 자행됐다. 심지어 병원장은 정형외과나 성형외과가 아닌 비뇨기과 전문의였다.
최근 강남 의료계의 ‘민낯’을 보여주는 일이 잇따라 발생해 경찰과 금융 당국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9월 말에는 시력교정술의 일종인 렌즈삽입술을 시술한 후 이를 백내장 수술을 받은 것으로 꾸며 보험금을 타낸 강남의 대형 안과 병원장 A씨와 환자 등 39명이 검찰에 송치되기도 했다. 이 역시 비용 부담이 큰 의료시술을 다른 항목으로 꾸며 보험금을 타내는 보험사기의 일종이다.
보험설계사나 브로커까지 가담하는 등 의료보험사기의 종류가 세분화하고 숫자도 늘어 좀 더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올해 상반기에만 4,000억원에 달해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해 12월 금감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 공동조사 결과 백내장 수술, 체외충격파쇄석술(비뇨기과 시술) 전체 보험금 지급 청구건의 5%(2만8,063건)가 허위청구 등 보험사기로 나타났다. 금감원 관계자는 “도수치료처럼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치료가 반복되는 경우 비용 부담이 커 환자들이 보험사기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며 “편취금액이 소액이라도 환자 역시 병원과 함께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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