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골품제가 만들어진 4∼5세기부터 조선 후기인 19세기까지 한국을 지배한 것은 정치체제가 아닌 친족 이데올로기다.”
1960년대 한국에서 연구한 최초의 서양인으로 해외 한국학 1세대 학자인 마르티나 도이힐러 런던대 동양·아프리카 연구대학(SOAS)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그의 주장은 신간 ‘조상의 눈 아래에서’에 자세히 담겼다. 1,0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은 도이힐러 교수가 지난 50년 동안 열정을 다한 한국사 연구가 집대성된 것이다.
신라시대 초기에 생겨나 가장 대표적인 사회 단위로 뿌리내린 한국 고유의 ‘출계집단(씨족 또는 족, 겨레)’에 초점을 두고 신라 초기(4~5세기)부터 19세기 후반에 이르는 한국 출계집단의 역사를 다룬다. 도이힐러는 이 같은 친족 이데올로기가 출생을 기반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엘리트를 창출했고, 엘리트에게 시공을 초월하는 힘이 부여됐다고 말한다. 양반, 사족 등 명칭만 달라졌을 뿐 엘리트층은 자신의 출생 배경, 조상을 통해 스스로를 정의했다.
이 밖에도 신흥사대부 조선 건국론’에 대해 신흥사대부의 출현은 애초에 없었다며 고려의 세족(世族)이 조선의 사족(士族)으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점, 고려 말의 권문(權門)과 세족은 엄연히 다른 집단이기 때문에 권문세족이란 용어는 폐기하자는 점 등 한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안하는 점이 흥미롭다. 4만5,000원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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