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스코리아가 부하직원들에게 수년간 폭행과 성희롱을 일삼은 임원에게 솜방망이 징계 처분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이 회사는 지난 4월에도 부사장이 회식 때 직원을 폭행해 해고된 전력이 있어 업계에서 더 큰 공분을 사고 있다. 최근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등의 직원 폭행으로 ‘직장 갑질’ 문제가 부각된 상황이어서 기업의 대응도 더 단호해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 4월20일자 28면 참조
23일 가전 업계에 따르면 필립스코리아의 헬스시스템즈(의료기기 사업) 부문 A 전무는 지난달 말 회사 인사위원회로부터 직원 폭행·폭언 등의 문제로 1개월 정직의 징계 처분을 받았다. A 전무는 이달 초 정직에 들어가 다음달 초 회사에 복귀할 예정이다. 문제는 A 전무가 받은 징계 수위가 갑질행위에 비해 너무 가볍다는 평가가 업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수년 동안 사내에서 A 전무에게 괴롭힘을 당한 전현직 직원들이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A 전무는 2016년 5월 회식 때 노래방에서 만취 상태로 이유 없이 과장급 직원의 뺨을 때린 것으로 전해졌다. 2014년 말에도 회식 장소 화장실 근처에서 사원급이었던 한 직원의 머리채를 쥐고 흔들었다. 또 여성적인 성격의 남성 부장에게 “그래 갖고 부부생활은 제대로 하느냐” 등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발언을 내뱉고 욕설을 퍼부은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직원 중 2명은 A 전무의 횡포를 견디지 못해 결국 퇴사했다. 피해자 가운데는 스트레스로 몸무게가 10㎏ 이상 준 사람도 있었고 외부 핫라인으로 신고했다 신분만 알려져 곤란한 상황에 빠진 직원도 있었다. 반면 A 전무는 올해 초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하는 등 오히려 승승장구했다.
그러다 4월 회식 자리에서 40대 팀장 2명의 뺨을 때린 B 부사장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당시 필립스코리아는 이에 대한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다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이 사실관계 조사에 나서자 B 부사장을 해고했다. 이에 직원들은 A 전무 등 사내의 또 다른 갑질 사건들을 6월께 추가 보고했고 사측은 3~4개월 동안 사실관계를 조사한 뒤 A 전무를 인사위원회에 회부했다. 필립스코리아는 이전에도 모바일 직장인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와 퇴직자 등을 통해 사내 폭행이 장기간 여러 차례 있던 회사로 알려졌다.
하지만 결국 A 전무에 대한 징계가 아무런 형사조치도 없는 정직 1개월로 끝나자 상식과 동떨어진 처분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회사의 대응이 현 수준에 그친다면 앞으로 같은 일이 발생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위계에 의한 보복 등이 두려워 제대로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필립스코리아 측은 “형사조치의 경우 회사의 노력에도 피해자들의 진술을 받기가 어려워 진행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해당 사건에 대해 이미 직원들과 공개 소통 자리를 가졌고 정직 이외의 추가적인 인사조치도 검토하겠다”고 해명했다. /윤경환·심우일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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