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법관대표회의 소속의 현직 부장판사가 “동료 판사에 대해 탄핵을 촉구한 법관대표회의 자체를 탄핵해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지난 19일 법관대표회의의 ‘재판거래 의혹’ 연루 법관 탄핵 촉구 의결 이후로 법원 내 갈등이 극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김태규(사진)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23일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에 ‘전국법관대표회의의 탄핵을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고 “법관들에 대한 탄핵 의결은 정당성을 갖지 못하는 다분히 정치적인 행위로 그러한 의결에 이른 법관대표회의의 탄핵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법관대표회의는 앞서 지난 19일 “법원행정처가 정부 관계자와 특정 재판의 진행방향을 논의한 행위는 탄핵소추 절차까지 함께 검토해야 할 헌법위반 행위”라는 선언문을 찬성 53표, 반대 43표, 기권 9표로 채택했다. 투표에 참여한 판사 105명의 과반을 1표 차로 간신히 넘겼다.
김 부장판사는 “수사도 끝나지 않았고 재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안을 증거 한 번 살펴보지 않고 겨우 두세 시간 회의 끝에 유죄로 평결했다”며 “법원이 나서서 그 권한을 행사하라고 의견을 내는 것 자체가 권력분립의 원칙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비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진행 경과를 보면 대단히 신속히 이뤄져 잘 짜인 각본에 따라 움직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며 “모든 것이 이뤄지는데 불과 일주일 남짓의 시간이 걸렸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진보성향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법관들이 법관대표회의 집행부 상당수를 차지하면서 법원 여론을 움직인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실제로 이날 일부 법관대표들은 소속 법원의 다수의견을 따르지 않은 채 자기 의사에 따라 투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장판사는 당시 탄핵 촉구로 의견을 몰아가는 회의 분위기와 판사들의 대표성에 의문을 표하며 회의장을 중도에 나갔다.
반면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이자 법관대표회의 일원인 류영재 춘천지법 판사는 “표결한 법관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라며 곧바로 맞받아쳤다. 류 판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관 탄핵 촉구안에) 특정 연구회 회원이라서 정치적 의도를 갖고 표결을 했다고 근거도 없이 몰아붙이는 억측은 위험하다”며 “이번 의안에 대해 어느 한 쪽으로 쏠리지 않게 법관들의 의사가 나타났다”고 반박했다. 이어 “토론을 통해 소속 법원의 의견수렴과 다른 주장에 설득돼 표결한 대표도 있었을 것”이라며 “표결 결과를 보며 법관대표회의가 어느 정도 법원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는 회의체 기구가 됐다고 느꼈다”고 주장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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