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국제형사경찰기구(ICPO·인터폴) 총재가 탄생했다. 이번 선거에는 러시아 후보가 출마하면서부터 단일 국가 간의 경쟁이 아닌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미국, 유럽 등 반러시아 국가들과의 외교전으로 비화됐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 인터폴 총재의 책임과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김종양 인터폴 부총재는 21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87차 인터폴 총회’에서 신임 총재로 선출됐다. 경쟁자로는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알렉산드르 프로콥추크 인터폴 부총재가 출마했다. 러시아가 일찌감치 공을 들여온 만큼 유세하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지만 결과는 김 총재의 승리로 끝났다. 인터폴 총재 투표 결과는 비공개이지만 압도적인 표차로 김 총재가 승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재의 당선은 러시아에 대한 반대여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콥추크 부총재의 출마 선언 이후 회원국들 사이에서는 인터폴의 적색수배가 푸틴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인사들을 탄압하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우크라이나와 리투아니아는 러시아 후보가 당선될 경우 인터폴을 탈퇴를 고려하겠다고 선언했고, 영국 역시 인터폴 탈퇴를 거론했다. 투표를 하루 앞두고 미국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성명을 통해 공식적으로 김 총재를 지지하기도 했다.
◇인터폴의 가장 강력한 무기 ‘적색수배’ 놓고 외교전
서방국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바로 인터폴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적색수배다. 인터폴 적색수배는 8가지 수배 등급 중 가장 높은 등급이다. 인터폴 승인이 떨어지면 도피범을 잡는데 전 세계 194개 회원국들의 공조가 이뤄진다. 각국의 사법당국을 통해 수배자의 사진과 지문 등 관련 정보가 공유되고, 신병이 확보되면 곧바로 송환이 이뤄진다. 국경 없이 사법권 행사가 가능한 강력한 무기인 셈이다.
국내에서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장녀와 유섬나씨와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적색수배를 받아 국내로 송환됐다. 최근에는 계엄령 문건 작성 지시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에 대한 적색수배가 인터폴에서 검토되고 있다. 이러한 적색수배가 정적 제거 등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러시아 후보를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결국 이런 우려가 인터폴 회원국들 사이에 퍼지면서 김 총재 지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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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은 2년 전에도 발생했다. 전임자인 중국의 멍훙웨이 총재가 2016년 인터폴 총재에 출마하자 미국과 유럽은 멍 총재를 견제하기 위해 뭉쳤다. 당시에도 시진핑 주석이 부패 척결을 추진하면서 중국이 반체제 인사들을 색출하기 위한 도구로 인터폴을 활용하려 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중국이 막대한 지원에 나서면서 결국 멍 총재가 선출됐다. 멍 총재 재임 중 한해 100명의 해외도피사범이 중국으로 송환됐다는 보고도 나왔다.
이번 선거 직후 해외 언론들이 김종양 신임 총재의 선출을 ‘서방의 승리’라고 평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역대 28명의 인터폴 총재 가운데 아직까지 러시아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인터폴 총재는 대부분 독일, 스웨덴 등 유럽 국가 출신들이며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필리핀, 일본, 싱가포르, 중국에 이은 5번째 인터폴 총재 배출국가로 기록됐다. 김 총재는 출마연설에서 “인터폴에 대한 정치적 편향이나 개입을 차단하고 아시아·아프리카 등 소외된 회원국들의 치안력 격차 해소를 최우선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총재, 무보수 명예직으로 대부분 국내에서 활동
김 총재의 선출 소식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인터폴 총재가 거액을 받는다는 소문이 퍼졌다. 하지만 인터폴 총재는 무보수 명예직이다. 회의 참석을 위한 출장비 등 활동비가 일부 지원되기는 하지만 공식적으로 받는 급여는 없다. 김 총재는 입국환영 기자회견에서 “인터폴 총재가 돈을 많이 받을 거라고 하는데 사실과 다르다”며 “출장 경비 외에 지원받는 금액은 없지만 해야 할 일은 막중하다”고 말했다.
총재가 인터폴 본부가 있는 프랑스 리옹에서 근무한다는 것도 사실과 달랐다. 인터폴 본부에는 100여개국 경찰기관 관계자 950여명이 파견돼 근무한다. 하지만 인터폴의 주요업무는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총재는 자국에서 머물며 주요 안건에 대해 사무총장으로부터 수시로 보고받으며 공식적으로는 분기별로 한 번씩 이뤄지는 총회에만 참석한다. 김 총재는 “특별한 일이 없을 때에는 대부분 국내에 머물 계획”이라며 “오는 3월 집행위원회의 때 처음 공식석상에 서게 된다”고 설명했다.
인터폴 총재 임기는 4년이지만 김 총재는 전임자였던 멍 전 총재의 잔여 임기인 2020년 11월까지 2년간 재직한다./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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