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경비함정이 크림반도 인근을 지나던 우크라이나 함정에 포격과 충돌공격을 가하고 이들 선박 3척을 나포하면서 양국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후 관계가 악화한 두 나라 사이에 화력을 동원한 해상충돌까지 발생하자 국제사회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흑해 일대는 가스와 곡물 수출의 요충지인 만큼 양국의 대치 상황이 국제 경제에 미치게 될 파장에도 이목이 집중된다.
2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경비함정은 이날 케르치해협을 통과해 아조프해로 항해하려던 우크라이나 해군을 포함한 2척과 예인선 1척에 포격과 충돌공격을 가한 뒤 이들 3척을 모두 나포했다. 우크라이나 해군은 이 과정에서 소형 함정 베르디안스크가 반파되고 군인 6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공격을 가했다”고 주장하며 전시내각을 소집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의 이날 공격을 ‘침략행위’로 규정하고 60일 동안 우크라이나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기로 하는 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긴급이사회 소집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군함이 사전 승인을 받지 않고 러시아 영해에 불법 진입함에 따라 적법하게 대응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양국이 충돌한 케르치해협은 크림반도 동부에 위치한 해협으로 흑해와 아조프해를 연결하는 요충지다. 2003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양국 간 조약을 통해 공유 영해로 지정하면서 양국 선박은 사전에 항행 계획을 통보하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다. 러시아는 통보 없는 무단 항행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우크라이나는 항행 계획을 러시아에 미리 통보했다고 반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양국 간 심각한 충돌이 이 지역에서 발생한 것은 이곳의 지리적 이점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아조프해는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들이 장악한 우크라이나의 남쪽 지방과 접하고 있는데다 밀 등 주요 곡물 수출항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러시아가 올 5월 케르치해협과 러시아 크라스노다르 지방을 잇는 ‘크림대교’를 건설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직접 트럭을 몰고 이 다리를 건너는 등 이 일대에 노골적인 관심을 표하는 것도 이 점과 궤를 같이한다.
이날 선박 나포 사태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크고 작은 충돌이 이어지는 가운데 발생한 가장 심각한 양국 간 충돌이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속한 자치공화국이던 크림반도는 2014년 3월 친러시아 성향의 현지 주민들이 주도한 주민투표를 근거로 러시아에 병합됐다. 이로 인한 양국 간 군사적 충돌과 분쟁으로 발생한 사망자는 1만명이 넘는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대러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는 미국 등 서방은 이번 사태에서도 우크라이나 편에 섰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국제법에 따라 우크라이나의 아조프해 접근을 보장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특히 국제사회는 2010년 이후 지구온난화에 따른 폭염으로 곡물 가격 변동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이 지역을 둘러싸고 계속되는 정정불안이 국제 곡물가를 또다시 요동치게 하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양국 간 군사적 긴장감은 세계 식량 무역에서 또 다른 애로 사항(chokepoint)”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로이터는 26일 독일 외무부 대변인을 인용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독일·프랑스의 고위 관료들이 이날 베를린에서 우크라이나 해군 함정 나포 문제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 만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외무부 대변인은 “이번 회담은 우크라이나 분쟁 해결을 위해 예정된 것”이라면서 “주말에 발생한 문제를 논의하고 해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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