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의 눈높이’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전면 재검토 지시를 내리면서 국민연금 개혁이 난기류에 빠졌다. 청와대가 “보험료 인상이 특히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고 밝히면서 복지부의 소득대체율 45~50%로의 상향 또는 현상 유지와 함께 보험료율 12~15%로의 인상안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또한 평소 보험료율은 소폭 올리면서 소득대체율은 50%로의 상향을 주장한 김연명 사회수석이 임명되면서 연금개혁 문제는 ‘부과방식 전환’ 등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틀에서의 논의도 확산되고 있다.
■“보험료 인상 없는 노후소득 보장 강화가 국민 눈높이?”
지금의 국민연금 개편방향은 보험료율 인상은 최소화하면서 소득대체율은 50%로 올리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소득대체율 50%는 문 대통령의 공약이고 김연명 사회수석은 ‘용돈수준’에 불과한 국민연금의 지급수준을 올려서 노후보장을 강화하자는 것이 평소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민연금 재정이다. 노후소득 보장과 재정 안정화는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있을 때마다 충돌하는 핵심 쟁점이다.
김연명 사회수석은 “보험료율 인상은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소득대체율 50%’에 무게중심을 둔다. 서로 상반돼 보이는 ‘소득대체율 인상-보험료율 인상 최소화’ 주장의 밑바탕엔 국민연금의 부과방식 전환이 있다. 부과방식은 그해 걷은 돈을 그해에 주는 방식으로 만약 해당 연도에 줘야 할 돈이 걷은 돈보다 많다면 부족한 돈은 세금으로 충당하게 된다.
김 수석은 “국민연금 제도는 1988년 설계할 때부터 기금 고갈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국민연금 기금을 많이 쌓아놓고 그 돈을 기반으로 해서 연금을 주는 나라는 스웨덴, 미국, 일본 등 몇 나라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아예 연금기금 자체가 없다. 예를 들면 독일 같은 나라는 한 달 치 적립금을 갖고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불안정한 인구구조상 부과방식 제도의 성공 여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은퇴후 연금을 받게 될 현 세대는 고령화로 늘어나는 반면 부과방식 전환 시 이를 부담해야 할 미래 세대는 저출산으로 줄고 있기 때문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예상되는 급여액만큼 부담하는 부과방식은 세대간 인구구조가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가능하다”며 “노인 인구 비율이 서구 국가들은 많이 가봐야 25%인 반면 우리나라는 2060년이면 41%까지 오르고 합계출산율(15~49세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수)이 올해 1.0명도 깨지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도 “연금 제도 도입이 오래된 국가들에선 부과방식으로 가지만 한국에선 상상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현재 연금개혁에선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한데 대통령이 그 카드를 제외해 버리면 알맹이가 빠지는 셈이라 연금개혁방안을 짜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보험료율 인상· 부과방식 전환 등 현재·미래 세대 눈높이 맞출 사회적 대화 필요”
소득대체율을 높이면서 보험료율 인상은 최대한 자제하는 국민연금 개혁이 가능할까. ‘국민 눈치’를 보며 양립하기 어려운 문제의 접점 찾기를 한다는 점에서 ‘인기 없는 개혁’을 가지고 ‘폭탄 돌리기’를 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한 연금전문가는 “국민연금 개혁은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고민이 엮여있어 차분하게 논의해야 하는데 현 상황에서는 합리적인 논의가 이뤄지기 힘들다”면서 “결국 피해는 국민이 안게 된다”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3일 국민연금 개혁안과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후퇴하지 않고 노후소득 보장과 안정적인 기금운용이 가능하도록 개혁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박장관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두 가지 기본 요건을 충족시키면서 현 제도보다 나은 방안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또한 김연명 사회수석은 같은 날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올리지 않고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방안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제가 가장 좋은 연금제도라 생각하는 것은 독일형, 일본형 연금제도가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통해 만든 연금개혁안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결국 지급방식이나 소득대체율 인상 여부에 대한 견해와는 별개로 여론의 반발이 크더라도 적든 많든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에서 현 세대와 미래 세대를 아울러 국민 모두가 만족하면서 반발하지 않는 ‘마법의 숫자’는 없다. 노후보장을 위한 소득대체율 인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지만 보험료율을 올리거나 기존 적립방식에서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는 데는 다양한 이견이 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국민연금을 둘러싼 모든 내용을 현 세대와 미래세대가 100% 만족하는 안까진 아니더라도 대화를 통해 최대 공약수를 찾아가려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참에 공론화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소득대체율과 세대간의 형평성·지속가능성에서 균형적 눈높이를 맞춘 ‘한국형 연금체계’ 마련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이정법기자 gb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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