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지난해 8월 이후 15개월 만에 북한과 거래한 제3국 기업 자금몰수 소송까지 거는 ‘강수’를 둔 것은 북한에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라는 강력한 압박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시간이 갈수록 대북제재는 더 강해지고 북한의 꿈은 멀어질 것이므로 눈높이를 낮추고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라는 뜻으로 읽힌다. 또 한미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한국에도 비핵화 없는 경제협력에 나서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를 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 법무부가 연방법원에 소송을 낸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됐던 지난해 8월 이후 없었던 조치다. 특히 지난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화해 무드가 조성된 후 처음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만큼 미국의 강경한 의지가 읽힌다.
미국은 북한이 ‘노이로제’ 반응을 보이는 인권 문제도 건드리고 나섰다. AFP통신은 27일(현지시간) 미 정부가 북한 인권을 주제로 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를 다음달 10일 개최할 것을 유엔 안보리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회의가 열리면 2014년 이후 5년 연속 열리게 된다. 북한은 당장 반발하고 나섰다.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현재의 긍정적 국면을 북돋는 게 아니라 대립을 부추길 것”이라고 반발했다고 AFP는 전했다.
이외에도 유엔과 관련국들이 대북제재 위반이 의심되는 기업과 선박을 대상으로 대규모 조사를 하는 것도 향후 대북제재의 범위와 강도를 대폭 넓힐 것으로 보인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북한 유류·석탄 밀거래와 관련해 적어도 선박 40척과 130개 기업에 대한 조사를 유엔과 관련국들이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는 북한이 이 과정에서 대북제재를 피하기 위해 선박 서류 위조, 자동선박식별장치 차단, 허위신호 송신 등의 방식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높이는 의도는 무엇일까.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현재 북미는 북한의 핵신고·검증 방식을 놓고 팽팽한 물밑 줄다리기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은 핵시설 ‘사찰’보다 강도가 낮은 ‘참관’과 핵 관련 문서 제출 정도만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인 반면 미국은 사찰과 시료 채취까지 요구하는 듯하다”고 현재의 판을 설명했다. 결국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제재는 강화될 것이라고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경제신문 펠로(자문단)인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한국의 대북제재 완화 움직임에 대한 경고라고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음달 1일 아르헨티나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가운데 한국에 너무 앞서나가지 말라는 신호를 미리 줬다는 것이다. 이는 남북관계가 활성화되면 북미관계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펴온 청와대에도 상당한 부담이 되는 조치다. 이밖에 미국은 중국·러시아 등 제재완화에 전향적인 나라와 전 세계 각국에도 대북제재를 어기면 미국의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경고를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청와대가 쓸 수 있는 협상 카드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신 센터장은 “미국은 시간이 갈수록 북한이 불리하다는 계산인 반면 북한도 ‘한 번 판이 엎어져도 미국은 다시 협상에 응할 것이므로 한 번 더 협상력을 높이자는 생각”이라며 “북한에 미국이 요구하는 수준의 검증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의 제재완화를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우리가 갈수록 북한에 끌려가는 듯한 행동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뉴욕=손철특파원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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