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사건 연루 의혹과 예멘내전 개입 등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16조원대의 무기수출 계획에 서명했다. 반면 미 의회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준 트럼프 행정부에 강력히 반발하며 예멘내전에서 미국의 사우디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제동을 걸고 나서 향후 사우디와의 관계설정을 두고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 간 불협화음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 국무부는 28일(현지시간) 사우디가 미 최대 방위산업체 록히드마틴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를 150억달러(약 16조8,000억원)에 사들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양국 정부 당국자들의 서명이 이미 지난 26일 이뤄졌으며 여기에는 44대의 사드 발사대와 미사일, 관련 장비가 포함됐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2016년 12월부터 이뤄진 사드 수출 논의가 완료됐다”며 “갈수록 고조되는 이란과 이란이 지원하는 극단주의 단체들의 탄도미사일 위협에 직면한 사우디와 걸프 지역의 장기적 안보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CNBC에 따르면 미 국방부의 최대 무기공급 업체인 록히드마틴이 제작하는 사드는 미국의 핵심 미사일 방어 시스템이다.
이날 발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20일 “미국은 사우디의 변함없는 동반자로 남을 것”이라며 카슈끄지 살해사건과 관련해 사우디 왕실에 면죄부를 준 데 이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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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막대한 무기수출을 명목으로 사우디 왕실의 인권침해 의혹을 덮으려 하자 미 의회는 ‘강대강’ 전략으로 맞서고 나섰다. CNN에 따르면 이날 미 상원은 사우디 주도의 예멘내전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중단하는 결의안을 추진하는 안건을 표결에 부쳐 63대 37이라는 압도적인 숫자로 통과시켰다. 역대 최악의 내전 중 하나로 꼽히는 예멘내전은 후티반군에 대응하기 위해 2015년 3월 사우디가 개입하면서 국제전 양상으로 커졌으며 지난 3년간 1만여명의 사망자와 200만명의 난민을 발생시켰다. 미국은 예멘 공습에 동참하고 있지 않지만 사우디 동맹군에 연료공급, 표적정보 제공 등을 지원하고 있다.
안건 표결에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의회에서 미국과 사우디의 전략적 관계를 위한 예멘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의 비공개 보고를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상원 출석 후 기자들에게 “미국이 관여하지 않는다면 예멘내전은 엄청나게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으며 매티스 장관 역시 “왕세자가 (카슈끄지 사건에) 연관됐다는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들 장관의 보고를 받은 뒤 의회는 대(對) 사우디 노선에서 행정부와 뚜렷하게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불리는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의원은 지나 해스펄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상원에 불참한 것과 관련해 “CIA의 브리핑이 없었기 때문에 불충분한 보고였다”며 “해스펄이 브리핑하기 전에는 임시 예산안을 비롯해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현안 관련 표결에 불참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표결 결과는 사우디뿐 아니라 사우디와의 관계를 지키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상원의 역사적인 반발”이라고 해석했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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