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무리 부대, 제 26기계화보병사단이 창설 65년 만에 역사 속으로 흩어졌다. 대신 사단사령부와 주력 여단이 존속한 채 다른 기보사의 여단을 배속받아 새로운 8기계화보병사단으로 거듭났다. 새롭게 출발하는 8기보사단은 최신예 K2 흑표전차를 운용하는 양대 핵심 기보사단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주목할 대목은 8사단과 26사단의 통폐합으로 군 구조개편이 공식적으로 시작됐다는 점이다. 오는 2020년 말까지 3개 기보사가 독립기갑여단으로 축소되지만 전방사단의 기갑전력이 증강되고 미국제 구형 M48 전차가 후방으로 빠진다. 서북도서 해병대에는 이미 K1E1 전차가 배치되기 시작했다.
◇불무리 부대, 창설 65년 만에 해체=30일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소재 사단 본부에서 열린 부대 개편행사를 통해 26사단은 부대기를 내렸다. 한국전쟁 막바지인 지난 1953년 6월18일 전라북도 논산(196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충남 편입)에서 3개 연대(73·75·76)로 창설된 지 65년6개월 만이다. 강원도 화천군과 양구군, 경기도 연천군을 거쳐 1964년 현 위치에 주둔한 26사단은 6군단의 예비 보병사단으로 가장 많이 행군하고 야외훈련하는 부대로 용명을 떨쳤다. 1994년 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되면서 30기보사단과 2·5기갑여단의 일부 기보 및 전차대대를 배속받아 중서부 전선의 주력 사단으로 자리 잡았다. 기보사 개편을 기점으로 삼으면 24년 만의 해체다.
◇부대는 해체하되 ‘최강 오뚜기 부대’로 변신=다만 부대는 없어져도 전력은 남는다. 오히려 증강된다. 주둔지도 변하지 않는다. 부대 깃발이 오뚜기 부대(8사단)로 바뀔 뿐이다. 8사단과 26사단이 합쳐 새롭게 출발하는 8기계화보병사단의 사단장도 마지막 26사단장을 지낸 최진규 소장(학사 9기)이 맡았다. 8사단은 이름만 남았을 뿐 26사단이 새로운 8기보사의 주력이라고 볼 수 있다. 26사단 73기계화보병여단과 포병여단, 대부분의 직할대가 새로운 오뚜기 사단에 남았다. 대신 75·76여단 예하 부대들은 26사단이 기보사단으로 개편하기 전의 기갑여단이나 전방사단으로 흩어졌다. 일부 전차는 연평도와 백령도의 해병대로 갔다.
새로운 오뚜기 사단은 75·76여단을 내보내는 대신 전통의 기보여단들을 받았다. 육군 기계화부대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2개 기보사에서 각각 1개 여단씩 오뚜기 사단 깃발 아래로 들어왔다. 1948년에 창설된 한국군 최초의 독립기갑연대라는 전통을 지닌 여단도 여기에 포함됐다. 전군 최초로 K1A1·K2 전차를 받았던 00기보여단도 새로운 8사단에 들어왔다. 육군은 8기보사에 최신 무기를 몰아줘 새로운 간판 사단으로 키울 계획이다. 장비로도 부대 역사로도 8기보사는 K2 전차를 운용할 중동부 전선의 통합 11기계화보병사단과 더불어 최강 기계화보병사단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말 11·20사 통폐합, 11기보사로 개편=26사단의 8사단으로의 발전적 통합은 군 구조개편이 공식화됐다는 의미가 있다. 내년 말에는 11사단과 20사단이 11사단으로 합쳐진다. 당초에는 20사단이 11사단을 흡수하며 주둔지를 경기도 양평에서 강원도 홍천으로 옮길 예정이었으나 11사단 명칭을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이 과정에서 논란이 적지 않았다. 국내 두 번째 기계화보병사단이라는 역사성과 가장 먼저 최신 장비를 받아온 최정예 사단이라는 점에서 창설일자와 단대호(단위부대번호)가 11사단보다 느려도 ‘20사단’이라는 명칭이 살아남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홍천을 포함한 강원도 지역, 예비역들이 군부대 유치 및 11사단 명칭 존속 운동을 펼치며 기류가 바뀌었다. 반대로 양평 지역에서는 무관심을 넘어 아파트를 짓기 위해 군부대가 떠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며 ‘11사단 존속’으로 굳어졌다. 새로운 11사단은 ‘아시아 최강 기계화부대’로도 평가되는 20사단을 흡수하면서 새로운 8사단과 함께 기계화부대 투톱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현리 지역에 주둔하는 전통의 기계화보병사단은 K2 전차의 4차 양산이 결정되지 않는 한, 즉 3차 양산까지 318량인 생산이 늘어나지 않는 한 K1A2 전차를 운용하게 된다. 주력 장갑차도 K21을 완비한 8·11사단과 달리 K200을 여전히 운용한다.
◇30기보사도 2020년 말까지 개편=6개 기계화보병사단 가운데 유일하게 7군단 소속으로 묶이지 않았던 30기계화보병사단도 이미 개편작업을 밟고 있다. 1955년 향토예비사단으로 창설돼 1980년대 보병사단으로 전환됐다가 1991년 10월 세 번째 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을 거쳐온 이 부대 역시 2020년 말까지 축소 개편을 앞두고 있다. 부대가 완전히 없어지는 게 아니라 1개 여단을 남기고 사단 직할대도 중령이 지휘하는 대대급에서 소령이 책임을 맡는 대(隊)급으로 축소돼 여단 직할대로 변신할 예정이다. 이미 1개 핵심 여단을 제외한 2개 기보여단은 해체 및 부대 이전 작업, 배속 변경 작업에 들어갔다. 2020년 말 30사단은 30기갑여단으로 개편된다.
◇‘기보사 헤쳐모여’ 전력 약화 아닌가=일각에서는 전력 약화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럴 만하다. 6개 기보사단·5개 기갑여단 체제가 3개 기보사단·8개 기갑여단 체제로 바뀌니까. 하지만 이는 겉만 본 평가다. 보안관계로 일일이 밝힐 수는 없으나 기갑여단의 전력이 훨씬 강해진다. 배속되는 전차대대가 많아지는 등 현재 여단과 사단의 중간급에 가깝다. 해체되는 부대들도 장비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전방사단에 배속될 예정이다. 전방사단의 기존 장비는 신개념의 동원사단으로 이관될 예정이다. 부대 해체를 포함한 부대 개편에도 장비와 전력의 총량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얘기다.
◇전방사단·기동군단 전력 오히려 강해져=군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부대 개편에 대해 “대규모 예비대 성격으로 운용되던 기계화부대를 조정해 전방으로 올려보낸 것”이라며 “전방사단의 전투력은 오히려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평시에는 후방에 배치·훈련하다 전시에 전방사단에 배속되던 기계화전력을 평시부터 배속시킨다는 개념”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계획에 따라 십수 개 기계화보병대대가 전방 상비사단 휘하로 들어간다. 특히 군단의 전력이 강해졌다. 지금까지는 기계화부대의 대부분이 3군 사령관이 운용하는 예비대였으나 앞으로는 군단장들이 실질적인 지휘권을 행사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방어해야 할 면적과 행동반경이 늘어난 군단이 중심이 되는 작전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수도권 방어의 중심 축선에 위치한 2개 군단의 경우 각각 1개 독립기갑여단을 직할부대로 거느렸으나 이번 개편으로 1개씩 더 늘어나 증강된 기갑여단을 2개씩 보유하게 됐다. 전방군단에는 다련장 로켓대대도 크게 신·증설될 예정이다.
기동군단도 마찬가지다. 외형상 5개 기계화보병사단을 거느렸다가 3개로 줄어든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5개 사단을 휘하에 둔 것은 이번 개편을 위한 한시적 조치였을 뿐 그 이전에는 2개 부대만 보유했는데 이제는 3개 기보사 체제로 굳어졌다. 더욱이 각 기보사에는 이전에 없던 항공단이 새로 창설될 예정이다. 공격용 및 병력수송용 헬리콥터를 보유하게 될 3개 기보사의 전력은 이전과 비할 바가 아니다. 신임 최진규 8기보사단장은 “부대 개편은 육군이 인력 중심에서 최신장비를 갖춘 첨단군대로 변하는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 M계열 전차 2선 후퇴, 해병대도 K전차 완비=이번 부대 개편의 또 다른 특이점은 육군이 1960년대부터 사용해온 미국제 M48 전차가 전량 2선으로 물러난다는 점이다. 동부 축선을 비롯한 상비사단의 전차대대는 전량 국산 K시리즈를 갖추게 됐다. 1970년대 말 개량한 지도 40년이 넘어가는 M48계열 전차는 전자장비를 빼고는 전방사단에 준하는 무장을 갖출 예정인 5개 동원사단에 돌려질 예정이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었던 90㎜ 주포를 장착한 M48A3K 전차를 사용해온 서북도서의 해병대는 올해 K1E1 전차를 받았다. 2019년 중 해병 2사단의 K1E1 수령과 해병 1사단의 K1A2 전차 배치 계획도 육군 기계화부대 개편의 영향이다.
◇규모 축소돼 13년 만에 실행되는 국방 개혁=군 구조개편의 윤곽이 처음 잡힌 것은 2005년. 전시작전권 전환을 위해 국방력을 강화하려던 노무현 정부의 계획은 기보사단을 증설해 기동군단을 2개로 늘린다는 것이었으나 이명박 정부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해 1개 기동군단 유지로 축소됐다. 지금과 동일한 밑그림, 즉 3개 기보사를 해체해 군단 중심의 작전을 펼친다는 계획이 확정된 시기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제7군단 휘하에 5개 기보사를 몰아넣어 부대 개편을 용이하게 만든 2016년 12월 이후 2년이 지나는 동안 문재인 정부에서 이전 정부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4개 정권을 거치며 수정되고 보완된 국방 개혁이 본격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비록 규모는 축소됐으나 한정된 가용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역대 정부가 고심해온 결과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