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요지에 자리잡은 우즈베키스탄은 지정학적 이유로 과거 알렉산더 대왕의 헬레니즘제국, 페르시아, 몽골, 티무르 등 대제국들에 복속됐다. 19세기 후반 러시아제국의 지배를 마지막으로 1924년 우즈베키스탄공화국이 탄생했고 소련의 해체로 1991년 독립을 선언했다. 같은 해 12월 독립국가연합(CIS)에 가입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우리에겐 ‘고려인’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전체 인구의 1%인 약 18만명이 한국인 핏줄로 CIS 내 최대 한인동포 밀집 주거국가다. 우리나라는 1992년 통교 후 수도 타쉬켄트에 한국교육원을 열었다.
국토 면적은 447,400㎢로 남한의 4.4배가량이다.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무역이 크게 발달하자 오아시스의 도시 사마르칸트를 비롯한 코칸트·부하라 등이 중개지로 번성했다. 이 도시들을 무대로 활동한 대상들은 비단 무역을 주도하며 중국을 넘어 한반도에까지 진출했고 문화 융성을 이끌었다. 숱한 강대국의 활동 무대였고 8세기부터 이슬람교를 받아들여 다양한 문화색을 띤 유적이 남아있다. 비록 겨울엔 최저 영하 38도의 혹한이 이어지는 곳이지만 역사의 발자취를 좇고 싶다면 훌륭한 선택지가 될 것이다. 다행히 대한·우즈베크 항공 등이 수도 타쉬켄트까지 직항편을 운영 중이고 잘 찾는다면 50만원대의 왕복 운임도 발견할 수 있다. 또 30일간 비자 없이 여행할 수 있다. 시차는 4시간이다. 화폐 단위는 숨(soum)으로 한국에선 환전할 수 없으니 달러를 현지서 바꿔야 한다. 1US달러는 대략 8,100숨(10월 기준)이다. 현지 환전 때엔 은행보다 환전상을 이용하면 더 유리한 환율을 적용받는다고 하니 참고를. 영어가 잘 통하지 않고 기본적인 러시아어 회화 정도는 할 줄 아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 관광은 ‘길’을 따라 이뤄진다. 타쉬켄트·사마르칸트·부하라·히라 등을 중심으로 여행 일정에 따라 넣거나 빼면 된다. 이는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발달한 이 나라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톈산 산맥의 오아시스와 시르디르강 지류가 만나는 수도 타쉬켄트. 이곳은 중앙아시아 지역 최대 도시로 국가 경제·정치·문화의 중심지다. 이곳에선 여행자 필수코스로 ‘초르수 바자르(Chorsu Bazaar)’가 손꼽힌다. 네 개의 물길이 만나는 시장이란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장이 열린다.
우즈베키스탄 민족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아미르 티무르’에게서 찾는다. 한민족의 광개토대왕에 비견될 인물로 40여년의 정복전쟁 끝에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수도엔 그를 기리는 아미르 티무르 광장이 있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신시가지가 형성돼 있다.
스탈린에 의해 러시아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은 타쉬켄트에 정착했다. 서울시는 당시 우리 핏줄을 환대해준 데 감사의 의미를 담아 2017년 ‘서울공원’을 건립했다. 종루·정자 등 한국 전통 양식의 다양한 건물들이 지어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서울공원이 자리잡은 바부르 공원은 ‘우정 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우즈베키스탄과 수교를 맺은 다른 나라의 건축물도 들어설 예정이다.
★2001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다. 천일야화 ‘아라비안나이트’의 무대가 될 만큼 흥미진진한 역사와 문화로 가득하다. 이곳엔 민족의 아이콘 아무르 티무르가 잠든 ‘구르 에미르(왕의 무덤)’가 있다. 아무르 티무르 생전 전사한 손자 무함마드 술탄의 능묘로 조성했으나 그 역시 이곳에 잠들게 된다. 둘째 손자인 울루그 베그, 아들 샤 루크·미란 샤, 스승 미르 사이드 바라카 등 모두 9명이 함께 누워있다. 티무르의 무덤엔 “나의 평온함을 어지럽히는 자는 누구든 … 피할 수 없는 징벌과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라는 비문이 새겨져있다.
50숨 지폐에도 그려진 ‘레기스탄 광장’은 알현식·사열식 등 국가의 큰 행사가 자주 열리는 곳이다. 티무르가 사마르칸트를 건설했을 땐 상업의 중심지였고 현재와 같은 모습은 샤이바니 왕조 때 갖춰졌다. 중세 당시 국가 최고의 대학이었던 마드라사 울벡 등 웅장한 3채의 건물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산스크리트어 ‘뷔하라(승원)’에서 유래한 도시 부하라는 활발한 실크로드 무역의 요충지였다. 중앙아시아 가운데 고대 이슬람의 흔적이 가장 짙게 남은 이곳엔 부하라 칸국의 마지막 군주 에미르 칸의 겨울궁전 ‘아르크성(城’)이 있다. 7세기경 건축된 이 성은 ‘네모반듯한’ 상식을 뒤엎고 곡선형으로 축조됐다. 사암(砂巖) 지질로 인해 석재가 무른 탓에 둥글게 지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구조는 침략자 입장에선 성을 오르기 쉬웠고 때문에 숱한 전쟁으로 파괴와 재건을 반복했다. 현재의 모습은 18세기 부하라 칸국 당시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성 안에는 절대군주 에미르 칸이 백성을 가두고 학살한 감옥과 금고가 있어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학정과 탐욕으로 점철된 아르크성은 결국 1920년 러시아에 무릎을 꿇었다. /김태원기자 reviv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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