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한가득 은행잎이 깔려 있다. 바스락바스락 밟는 소리, 낙엽 묵은 냄새…. 이 전시는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귀와 코로도 즐긴다.
이슬기(46)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삼청로 현대화랑 1층은 기품있는 진보라색 벽과 샛노란 은행잎이 보색에 가깝지만 세련된 색감을 과시한다. 직접 은행잎 위를 걸어보며 온몸으로 경험해야 작가 뜻을 헤아린 ‘제대로 된’ 감상법이다.
2층으로 올라가면 한 번 더 당황할지 모른다. 그림 대신 이불이다. 지난 2014년부터 통영 누비장인과 협업해 ‘이불 프로젝트:U’를 진행 중인 작가는 “공예품을 인류학적 오브제로 상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화,설화,속담 등의 상상력과 언어체계를 실험 중”이다. 연보라색 바탕에 길죽하게 변형된 노란 타원형이 얹힌 누빔이불의 작품명은 ‘싹이 노랗다(The young leaf is yellow)’. 간결한 선과 색채만을 이용해 일종의 기호처럼 속담을 풀어냈다. 풀색 부채꼴 위쪽으로 보라색·빨간색·주황색 면이 펼쳐지는 작품은 ‘불 난 집에 부채질한다’. 제목을 보고 작품을 다시 보면 꽤 그럴싸하다.
나무 체 테두리를 이용한 ‘나무 체 프로젝트O’는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가 양국의 곡물 측량 기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프랑스 중부 지역 나무 체 공예가와 협업한 작품이다. 신작 ‘바구니 프로젝트 W’는 멕시코 오악사카 북부지역 킥스카틀란 원주민들이 수공예 바구니를 짜면서 사용하는 언어 ‘익스카테코’에서 착안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불,체,바구니 등이 사소한 공예품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신화와 언어와 문화적 정체성, 그리고 이들의 생성소멸 과정이 응축돼 있다.
작가는 2007년과 2014년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했으며 최근에는 명품 패션 브랜드 에르메스와 함께 한정판 에디션 캐시미어 퀼트 콜라보 작업을 진행했고 내년 봄에는 가구 전문 브랜드 이케아(IKEA)와 진행한 ‘아트 러그’가 한정기간 판매될 예정이다. 전시는 12월23일까지.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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