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취임 한 달을 맞은 가운데 청와대의 정책 집행 속도가 빨라지고 부처 장악력이 높아지는 등 달라진 모습들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왕실장’으로 불리는 김 실장의 색깔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정책 설계자로 급부상한 김 실장과 취임을 앞둔 ‘경제사령탑’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앞으로 어떤 조합을 보일지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된다.
9일 청와대와 각 정부부처에 따르면 김 실장의 취임 이후 카드 수수료 인하, 포용국가 설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 등 굵직한 정책들이 속도감 있게 추진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경제정책과 관련해 내각에 직접 지시하는 모습이 부쩍 늘어난 것도 정책실장 교체 이후 달라진 모습이다. 정책 속도에 답답함을 느끼는 문 대통령의 의중이 김 실장의 조언을 거쳐 다시 내각으로 반영되는 모양새다. 김 실장은 지난 5일에는 장관 정책보좌관들을 대상으로 정책 강의를 진행하는 등 실세 실장으로서의 면모를 직접 보여줬다.
관치 논란을 빚은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도 김 실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영세 자영업자 수수료 감면 방안을 마련하라”고 최종구 금융위원장에게 공개적으로 지시한 지 나흘 만에 전광석화처럼 대책이 발표됐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과 관련한 담론 논쟁에 갇히기보다는 자영업자를 위한 빠른 보완 대책을 주문하고 있다”며 “전격적인 카드 수수료 인하는 문 대통령의 답답한 심경과 김 실장의 정책 스타일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탄력근로제 개선 방안 역시 청와대가 물밑 조율에 나서면서 논의가 본격화됐다. 노동계의 반발이 여전히 크지만 청와대는 최근 들어 ‘정책 유연성’을 갖춘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청와대 정책실의 한 관계자는 “김 실장은 세간의 평가보다 유연성이 높다”며 “당초 담당 부처에서 회의적이던 탄력근로제 개선 방안이 본격화된 것도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대통령이 특정 장관을 지목해 정책을 지시하고 청와대가 이를 공개하는 것 역시 장하성 전 정책실장 체제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장면이다. 문 대통령은 주요20개국(G20) 순방길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게 전화해 자영업자 지원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대통령의 공개적인 지시는 장관 입장에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처럼 문 대통령이 내각을 대하는 스타일이 확 달라진 것 역시 김 실장의 조언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이에 따라 ‘경제 투톱’으로 불리며 갈등을 빚어온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장이 앞으로는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청와대는 경제부총리의 ‘원톱’ 역할을 강조하고 있지만 물밑 설계자로서 정책실장의 영향력은 이전보다 더욱 막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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