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맹목적으로 지지·찬양하는 내용을 여과 없이 방영해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 4일 KBS 시사 프로그램 ‘오늘밤 김제동’이 남한 답방을 환영하기 위해 결성된 ‘김정은 위인 맞이 환영단’ 단장 김모씨와의 인터뷰를 보도하면서 김정은에 대해 “겸손하고 지도자의 능력과 실력이 있다” “우리 정치인들에게서 볼 수 없는 모습을 봤다” “팬이 되고 싶었다”고 언급한 것을 그대로 내보낸 것이다. 김씨는 같은 방송에서 민주적 선거에 따른 박근혜 대통령 선출을 북한식 ‘부자 세습’과 다름없다는 듯한 망언도 했다. 이 같은 사달은 ‘오늘밤 김제동’이 정치적 편향성 논란을 야기하면서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무릇 공영방송의 생명은 공공성 확보에 있다. 공공성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공정성·균형성을 갖추며 공익을 추구할 때 보장될 수 있다. 또 공영방송은 건전한 국민여론을 조성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럴 때만 공영방송이 책임 있는 사회적 공기(公器)로 대접받을 수 있다. 방송법 제5조(방송의 공적 책임)도 이러한 입장을 잘 반영하고 있다. 즉 방송법 제5조 1항은 방송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해야 한다”고 하고 같은 조 2항은 “국민의 화합과 … 민주적 여론형성에 이바지하여야 하며 … 갈등을 조장해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와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은 헌법 전문, 제8조와 제10조에 나온다. 따라서 위의 방송법 규정은 ‘헌법적 가치의 존중’을 밝힌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KBS의 방송 내용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겸손하고 유능한 지도자’ ‘위인’ 등의 인식은 일반 국민정서에 부합하지 않으며 부자 세습 운운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김정은은 공포정치로 주민들의 눈과 귀를 옥죄면서 ‘세계 최악의 수용소 군도’를 운영하는 인권탄압 지도자다. 현재 북한에서는 정치범 수용소, 공개처형, 자의적 구금 및 처형, 강제노동, 연좌제 적용 등 반문명적 인권침해가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들이 ‘반인도범죄(crime against humanity)’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유엔 총회(제3위원회)는 지난달 15일 14년 연속으로 북한인권결의를 채택하면서 책임자 처벌 및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를 권고한 바 있다.
또 김정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일련의 대북제재 결의로 촉구하고 있는 핵무기·탄도미사일 개발 프로그램 중단을 계속해서 거부 혹은 지연하고 있다. 합의로 포장된 ‘평화의 환상’을 우리 국민들에게 심으려고 하지만 그 전제조건인 핵 폐기에는 이렇다 할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은 ‘우리식사회주의’를 공고히 하는 가운데 남한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대남혁명전략을 견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은 지금까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로 인정되고 있고 김정은은 반국가단체의 ‘수장’ 지위에 있다.
게다가 북한은 6·25전쟁, 천안함·연평도 무력도발 등 우리 국민들에게 크나큰 위해와 상처를 준 사건들에 대해 사과하려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이 남한에 온다고 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작금 많은 국민은 ‘김정은 찬양’ 방송에 대해 뜬금없다고 생각한다. KBS 공영노조가 5일 성명을 내고 “KBS가 보도할 내용이 맞는가. 마치 북한 중앙방송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고 비판한 것은 대다수의 국민여론을 대변한다.
일각에서는 문제의 방송이 정부가 바라는 김정은 답방 분위기 띄우기의 일환인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위적인 시도는 ‘남남갈등’만 부추길 뿐 소기의 성과를 내기 어렵다. KBS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뼈저리게 자성하고 공영방송의 책임 있는 모습을 되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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