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국가혁신을 가로막고 있다. 한국의 감사원은 정책감사라는 과거 정책 실패를 징벌하는 성과감사를 시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감사원은 회계 부정 같은 모럴해저드만을 감사하는데 한국의 감사원은 특이하게 회계감사와 정책감사 모두를 수행하는 것이다.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정책감사에도 빛과 그림자가 있다. 현장 공무원들에게 성공적인 정책 집행을 촉구하는 순기능은 분명하다. 그러나 결과의 실패를 징벌하는 정책감사는 국가혁신을 저해하는 역기능도 존재한다. 정책감사가 시작되던 전윤철 전 감사원장 시절에는 순기능이 컸을 수 있으나 이제는 역기능이 너무나 커지고 있다. 바로 정부혁신이 저해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혁신 부진의 최대 이유로 감사원의 정책감사를 지목한다. 많은 국민은 감사원의 정책감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국가제도의 혁신은 지체된다. 그런데 문제를 잘 아는 공무원들은 이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다. 감사원의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현재 감사원은 적극행정지원제도를 확대하고 있다. 첨단기술 분야의 감사는 제한하고 있다. 분명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국가혁신에는 아직도 미흡하다.
혁신은 실패와 동전의 앞뒤 관계이기에 실패를 징벌하면 혁신도 사라진다. 과도한 실패 징벌은 혁신 저해라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게 된다. 감사원이 1을 지적하면 부처는 10만큼 반응하고 현장에서는 100만큼의 보신주의가 팽배하게 된다. 더구나 4대강과 같이 정권 교체에 따른 정치적 감사를 피하기 위해 이제는 핵심 업무를 회피하는 경향마저 나타나고 있다.
대한민국의 최고 엘리트들이 공무원을 지망하고 있다. 그런데 세계은행(IBRD)과 세계경제포럼(WEF) 등이 평가하는 공무원의 제도 경쟁력은 70위권을 맴돌고 있다. 20위권을 유지하는 이공계 기술 경쟁력보다 훨씬 하위권인 이유는 개인 역량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제도 경쟁력은 공무원 개인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의 문제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지 질문을 해보면 혁신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바로 실패를 과도하게 징벌하는 감사제도가 문제의 본질이다.
추격경제에서는 새로운 혁신보다 열심히 따라가는 효율이 중요했다. 실패란 나태와 무능력과 도덕성의 문제로 치부돼 징벌의 대상이 됐다. 그런데 탈추격의 혁신경제에서 실패는 혁신으로 가는 학습의 수단이 된다. 그런데 정부 부문은 아직도 실패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과거 추격시대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성공하는 공무원이란 새로운 혁신을 주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만들지 않는 사람이 됐다. 혁신에 성공한 공무원이 계속 혁신에 성공하지는 않는다. 언젠가 한 번 실패하면 인사상 결정적 타격을 받는다. 그래서 후배들은 혁신보다 혁신하는 척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교훈을 얻게 된다.
정직한 실패를 지원하는 조직문화에서 혁신은 싹튼다. 과거의 실패를 뒤지는 감사제도를 이제는 혁신해야 한다. 물론 도덕적 해이는 엄벌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직한 공무원들을 옥죄어서는 국가의 혁신이 사라진다. 공무원의 자부심과 도전정신이 없는 국가가 혁신성장을 할 수는 없다. 한국의 제도가 중국과 일본에 현격히 뒤처지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이유다.
그렇다면 감사제도의 대안은 무엇인가 생각해보자. 장기적으로는 감사의 본질에 입각해 국회의 국정감사와 통합해야 할 것이나 이는 헌법 개정 사항이다. 당장은 현재의 정책감사 역량을 활용해 과거지향적 감사에서 미래지향적 감사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
미국 감사원(GAO)은 과거의 정책 실패가 아니라 혁신 추진 이행을 감사한다. 미국 4차 산업혁명의 초석이 된 클라우드퍼스트 정책은 미국 감사원의 적극적인 혁신 이행 감사가 촉진제가 됐다. 한국의 감사원이 과거의 문제에서 미래의 혁신으로 감사 방향을 전환할 때 정부조직 혁신의 문이 열릴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