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사람입니다.”
tvN ‘라이브’ 관련기사 댓글 중 가장 뇌리에 남았던 경찰 독자의 한마디다. 그동안 경찰 소재의 드라마들은 모두 범인 잡는 이야기에 집중해왔다. 작품이 늘어날수록 나쁜 놈은 더 나빠졌고, 형사들은 더 고생했다. 지구대 경찰은 사건현장을 훼손해 형사에게 혼나거나, 경계를 서고 있는 ‘단역’일 뿐이었다.
최고의 작가로 손꼽히는 노희경은 1년여간의 사전취재 끝에 지구대 경찰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신참부터 정년퇴직을 앞둔 늙은 경찰까지, 아이의 탄생부터 죽음과 직면하기까지 인생의 희로애락을 꼼꼼하고도 정교하게 그려냈다. 에누리 없는 ‘직진화법’과 사랑에 대한 진심까지, 대중성을 입은 노 작가의 세계관은 진한 여운을 남기며 명작으로 남았다.
‘라이브’ 속 지구대는 온갖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한 회차 방송마다 보통 2~3건씩의 사건은 기본이다. 방대한 에피소드는 예측할 수도, 정신차릴 수도 없이 몰아친다.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사건사고에 일단 뛰고 보는 경찰들의 모습은 출근해서 퇴근까지 정신없는 우리들의 모습과 꼭 닮았다.
허둥지둥하는 신입과, 짜증내는 고참, 냉철한 소장과 부소장. 경찰들의 모습은 입체적이기보다 구체적이다. 몇 마디 대사만으로도 인물의 성장배경과 성격, 눈앞에 닥칠 사건이 그려진다. 배성우가 그냥 오양촌으로 보이듯 배우들은 익숙한 자신의 옷을 걸친 것처럼 캐릭터에 빠져들었다. 극본이 상상 이상으로 치밀했던 덕분이다.
노 작가의 작품세계는 상상에서 출발하는 법이 없었다. ‘라이브’도 철저한 계산이 깔려있었다. 지구대라는 새로운 세계관 속에 본인 특유의 메시지인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이 적절하게 배분됐다.
‘라이브’는 묵직한 메시지를 경찰 지구대의 에피소드로 포장한 작품이다. 사건을 해결하면 조직사회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이 과정을 극복하며 등장인물이 성장하는 구조다. 의욕에 넘친 시보들이 진짜 경찰이 되고, 사명감에 취해 내 위주로 살던 경찰은 가족의 의미를 깨닫는다.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찬찬히 설명한다.
이를 위해 작품은 ‘두려움’을 활용한다. 지방으로 도망친 송혜리(이주영 분)를 달래는건 늙은 사수 이삼보(이얼 분), 성폭행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한정오(정유미 분)를 감싸주는건 염상수(이광수 분), 악에 받친 이광수에 진심을 실어주는 이는 오양촌(배성우 분)이었다.
범인 검거과정에서 총기를 사용한 염상수를 위해 지구대 동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든다. 지구대장과 팀장은 서장에 맞선다. 사수 오양촌은 법정에서 그동안 삶의 유일한 자부심이었던 사명감이 사라졌다며 “누가 날 이렇게 만들었냐”고 절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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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더 나아가 작품은 사람의 인생 전반을 훑어나간다. 아이의 탄생부터 살인자의 자식으로 살게된 아이들, 가정폭력과 성폭력에 노출된 청소년, 데이트폭력, 취업전쟁, 사회 초년생, 결혼과 이혼, 직장내 승진과 징계, 자녀의 결혼과 부모의 죽음, 정년퇴직, 그리고 직면한 나의 죽음까지.
모두가 겪어야만 할 인생의 정거장들. 지구대 사람들의 사건들을 모으면 인생 전체의 흐름이 된다. 이미 지나쳤거나, 마주해야 할 사건이 닥쳤을 때 당신은 어떻게 대처할지 묻는다. 그리고 주인공의 오류를 냉철하게 비판하며, 이를 사람에게 위로받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오양촌(배성우)의 고백과 울분은 그 덕분에 힘을 얻었다. 나의 강점이 사실은 약점이었다고 고백하며 그는 어른이 된다. 끝까지 아내에게 숨기려 했던 속마음을 들춰낸 끝에 건넨 “난 네 옆에 있을 자격이 없어”라는 말을 듣고 안장미(배종옥)는 답한다. “어디 멀리 가지마. 그래도 내 인생에 네가 있다는건 큰 힘이고 빽이야. 내 인생에 자기마저 없으면 너무 슬플 것 같다” 그는 그렇게 다 늦게 진짜 어른이 된다.
과거 성폭행에 휘말렸던 한정오(정유미)의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 말 없이 “우리 뛰자”는 염상수(이광수). 한참 처진 채 함께 달리며 눈물 흘리는 그에게 한정오는 “어제 오늘 내 얘기 듣고도 아무말도 없고 위로도 안해주냐”고 묻는다. 눈물을 쏟던 염상수는 “슬퍼. 너무 슬퍼서 아무말도 안나와”라고 답한다. 그런 그를 보며 한정오는 다시 말한다. “상수야 나 너무 시원해. 누구한테라도 말하고 위로받고 싶었나봐. 너에게라도 말할 수 있어 너무 시원해”
작가는 ‘살다보면 그런일이 있지’라며 입에 발린 위로를 하지 않는다. 더 깊이 끌어내리고, 극한에 이르렀을 때 밑바닥에 있던 진짜 이야기를 끌어올린다. 예쁘고 강해 보이는 인물의 마음 속에 숨어있는 고통. 노희경 작가가 사람 이야기를 그려내는 방식은 ‘라이브’에서도 통했다.
‘사람의 고통은 사람으로 치유된다’는 노희경 작가 특유의 메시지가 대중적인 소재와 결합했을 때 반응은 엄청났다. 치밀한 취재와 귀에 쏙쏙 들어오는 대사,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력이 더해져 ‘라이브’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작품으로 완성됐다.
지난 5월 종영 기사 말미에 ‘머릿속이 봉은사 사거리에서 교통정리하는 오양촌의 신바람나는 호루라기 소리로 가득하다’고 썼던 바 있다. 그 말 아직 유효하다.
/최상진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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