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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명작열전④] '미스터 션샤인' 기억하나요, 오얏꽃 흩날리던 날의 찬란함을





한국의 독립운동사를 이렇듯 드라마틱한 드라마로 구현해 낸 작품이 또 있었을까. 무려 27년 전인 1991년작 전설의 작품 ‘여명의 눈동자’와 비견될만하다는 평을 들은 ‘미스터 션샤인’은 2018년 최고, 최대의 작품으로 손꼽아도 무방하다.

죽음을 피해 미국인이 된 조선인, 백정이 싫어 일본인이 된 조선인, 방황하는 조선인, 세 남자가 한 여인을 사랑한다. 이들은 서로가 그녀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이들 모두 여인의 안전을 위해 총과 칼, 그리고 붓을 들어 싸운다. 그 애달픈 사랑을 받는 여인은 고애신, 그리고 그녀는 조선(朝鮮)이다.

tvN ‘미스터 션샤인’은 김은숙표 판타지다. ‘도깨비’와 ‘태양의 후예’에 이어 상상에서나 가능한 러브스토리를 부끄럼 없이 펼쳐낸 작품이다. ‘파리의 연인’ 소재인 재벌에 이어 신화, 군대를 넘어 ‘역사’에 이르기까지 김 작가의 러브 판타지는 기대, 아니 상상 그 이상으로까지 세계관을 확장시켰다.

극 초반 유진 초이(이병헌)와 고애신(김태리)의 나이차, 역사왜곡 논란으로 잠시 부침을 겪기도 했다. 언론이 키운 논란에 일부 비판이 더해져 거대한 담론으로 번지는 듯 했지만, 이는 옥의 티만도 못한 해프닝으로 결론지어졌다. 인물간 러브스토리의 흐름이 조국의 독립으로 한데 모이는 순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러브의 본질은 겉으로 드러났다.



“귀하가 구하려는 조선엔 누가 사는 거요. 백정은 살 수 있소? 노비는 살 수 있소?”라는 유진 초이의 물음에 고애신은 답하지 못한다. 지키고자 했으나 정작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몰랐던 그다. 사대부의 애기씨 대신 이름없는 의병을 택하면서 점차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꿈꾸는 고애신의 모습은 작가가 시청자에게 원하는 글로리(Glory)였다.

유진 초이는 총을 든다. “날 쏜 여인의 손을 잡으란 말이오?” 고애신은 답한다. “총구 속으로 들어온 사내의 손을 잡는거요.” 그의 곁에서 잠시 뉴욕으로 떠나 행복한 일상을 꿈꾸기도 했던 고애신은 그것이 지구본에서는 두 뼘 거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 그녀의 원대한 꿈마저도 사랑했던 외로운 경계인 유진 초이는 그녀를 향해 날아드는 총알들을 온 몸으로 막아내며 한스러웠던 생을 마감했다.

구동매(유연석)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를 막아선다. 왜 쓸데없는 선택을 하냐고. 스스로 정혼을 깨고, 흠잡히고, 총을 들어 표적이 되는. ‘빚을 대신 갚으라’고 윽박질러야만 그녀를 주기적으로 볼 수 있음을 자신은 잘 안다. “그저 있습니다 애기씨”라는 말에 그는 자신의 목숨을 그녀에게 걸었다고 둘로 또 둘러 고백한다. 그리고 그녀가 꿈꾸는 세상을 위해 자신의 세상과 맞선 채 최후를 맞았다.



김희성(변요한)은 시를 건넨다. 고애신에게 꽃을 보는 법을 아냐던 그는 “꽃을 꺾어 서화병에 꽂거나, 꽃을 만나러 길을 나서거나. 나쁜 마음일 것은 잘 알지만, 그 길을 나서보려 한다”며 받아들여지지 못할 고백을 건넨 뒤 자신만의 무기인 펜을 든다. 마치 연서를 써내려가듯 발행되는 호외 속 일본의 만행들, 그는 웃는 낯으로 그녀의 안녕을 빌며 굵고 짧았던 사랑을 끝냈다.



고애신은 약한 인물이다. 행랑아범과 함안댁은 물론 모든 이들에게 보호받는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강하고 굳건하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배운 사격술로 사람을 지키고, 사람을 위해 눈물 흘릴 줄 안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그들과 함께한다. 새로운 세상을 위한 그녀의 거침없는 총성을 사람들은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다.

그녀는 곧 조선이었다. 수천년간 수백번의 위기에서 목숨을 걸고 지켜온 조국.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위해 사람들은 질 것이 분명함에도 싸움에 뛰어든다. 그리고 말한다 “그들은 그저 아무개다. 그 아무개 모두의 이름이 의병이다. 이름도 얼굴도 없이 살겠지만, 다행히 조선이 훗날까지 살아남아 유구히 흐른다면 역사에 그 이름 한 줄이면 된다”고.

‘오얏꽃 흩날리는 봄날의 햇살’처럼 승리의 영광은 잠시뿐이었다. 쿠도 히나(김민정), 김희성, 구동매, 유진 초이 모두 목숨을 잃었다. 이들의 선택은 고애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살려냈다. 모든 의사(義士)들이 그랬듯.

판타지와 로맨스의 대가 김은숙 작가는 사랑을 애국심으로 승화시키는 한국 드라마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을 만들어냈다. ‘의병이 사랑하는 이야기’라는 의혹을 눈 녹듯 녹여버린 그의 완벽한 세계관에 대중과 평단 모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훗날 2018년을 대표하는 작품은 무엇이냐 묻는다면 단연 가장 먼저 등장할 작품은 단연코 ‘미스터 션샤인’이다.



/최상진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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